― 그냥 뒹굴고 있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전부 이어져 버린 이야기 ―
인물·회사·지역·구체적인 친척 관계 등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지우거나 흐리게 바꿨다. 발달 특성에 관한 이야기는 관찰일 뿐, 누군가를 진단하는 것이 아니다.
제1화 친척 모임은 사실 관심 없는 회의였다
30살, 친척 모임에 왔다. 말할 기운이 전혀 없다. 눕는다. 휴대폰을 본다. 음식이 나오면 먹는다. 그러자 세 살 아이가 묻는다. "왜 계속 누워 있어?"
대답은 한마디.
"응, 졸려!"
말하는 실력만 다섯 살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던 사람이 휴대폰으로는 계속 메모하고, 가격 비교하고, 점심 맛집 찾고, 직업과 연봉을 찾아보고, 제도를 조사하고, 글감을 정리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켜 둔 AI 코딩 도구도 여전히 돌아가는 중이다.
사람 본체: 5W. 백그라운드: 24시간 가동.
한편 86세 어르신은 쉬지 않고 말하고, 화제가 휙휙 바뀌고, 이리저리 움직인다. 먼 곳에서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오셨는데도 배터리가 멀쩡하다.
젊은이: 절전 모드. 어르신: 게이밍 PC.
여기에 "가서 고맙다고 인사해" 같은 돌발 업무가 날아온다. 한마디지만, 하던 생각을 멈추고, 무엇에 대한 인사인지 파악하고, 누구에게 할지 정하고, 타이밍을 맞춰 말한 뒤, 원래 생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사 한마디인데 머릿속에서는 긴급 끼어들기 처리가 돌아간다.
다른 어른 한 명도 거의 말이 없다. 휴대폰도 안 보고 눕지도 않고 조용히 있다. 결국 그 자리에는 휴대폰으로 피하는 사람, 침묵으로 피하는 사람, 쉬지 않고 방송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나만 사회성이 고장 난 게 아니라, 그 방의 대화 용량이 그냥 꽉 찼을 가능성이 크다.
회사에서 관심 없는 회의에 앉아 있을 때와 똑같다. 대부분 흘려듣고, 재미있는 단어만 건지고, 궁금하면 바로 검색하고, 회의와 상관없는 딴 분석을 시작한다. 모임에 참여한 게 아니라 실시간 데이터를 지켜보며 특이한 값만 골라내고 있었던 셈이다.
제2화 "의욕이 없다"면서 머리 쓰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전날에는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약 7시간 했다. 너무 빠져서 밥도 뒤로 미룰 정도였다.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뒹군다. 그런데도 조사는 계속된다.
핵심은 움직일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스위치가 켜지느냐다.
미국 CDC와 NIMH는 ADHD 증상이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질 수 있고, 어른에게서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1][2] "집중력이 없다"기보다는 주의를 나누고, 유지하고, 전환하는 것이 들쭉날쭉한 쪽에 가깝다.
재미있는 게임은 몇 시간이고 한다. 지루한 잡담은 몇 분 만에 전원이 꺼진다. 가격 차이를 발견하면 갑자기 살아난다. 궁금한 게 생기면 조사가 시작된다.
특성은 문제가 되기 훨씬 전부터 있었을 수 있다. 어릴 때는 부모가 일정을 챙기고, 선생님이 마감을 알려 주고, 실수해도 주변이 메워 준다. 그런데 고등학교, 동아리, 아르바이트, 취업으로 갈수록 시간 관리, 여러 일 동시 처리, 지시 기억, 우선순위, 스스로 점검, 보고와 연락을 혼자 해내야 한다.
그때 깨닫는다. "어? 평범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
그래서 성인 ADHD 평가에서는 증상이 12세 이전부터 있었는지, 여러 생활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는지를 본다.[1][2]
다만 멍한 상태가 전부 ADHD인 것은 아니다. 수면 문제, 불안, 우울, 몸의 병, 약의 영향, 영양 상태, 불규칙한 생활도 집중을 떨어뜨린다.[1]
그러니 "게임 7시간 했다! ADHD 확정!"은 진단이 아니다. 그냥 꽤 화려한 게임 기록일 뿐이다.
제3화 친척 모임에서 집안의 '뇌 성향 기록'이 발굴되다
친척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평범한 직장을 오래 못 다녔다", "어릴 때부터 산만했다", "정신이 여기저기 튄다" 같은 옛날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진단은 아니지만, 실제로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정보는 담겨 있다.
CDC는 유전적 요인을 ADHD의 위험 요인 중 하나로 들고, 가족 안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3] ADHD라는 말이 흔하지 않던 시절에는 같은 어려움을 아주 현실적인 말로 기록했다.
"보통 직장 생활을 못 했지."
거칠게 들리지만, 거의 옛날 인사 기록 같은 말이다.
주의력 스타일을 설명할 때 "농경형보다 수렵형" 같은 비유를 쓰기도 하지만, "수렵형"은 의학 진단명이 아니다. 같은 특성이라도 환경에 따라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는 비유로 받아들이면 된다. 뇌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뇌와 직장의 궁합이 안 맞는 경우도 있다.
"두 살 때 책을 통째로 외웠다", "어린데 이상하게 거창한 말을 했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영재 아니야?" 싶어진다. 하지만 일본 문부과학성은 "IQ 130 이상이면 무조건 영재" 같은 단순한 기준을 쓰지 않는다. 지능뿐 아니라 창의성, 예술, 운동, 특정 과목 실력 등 다양한 분야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시험 점수 하나로 딱지를 붙이지 않는 방향이다.[4][5]
그러니 "두 살에 책 암기 → 영재 확정"은 아니다. 다만 또래와 크게 다른 모습이 여러 상황에서 꾸준히 보인다면 좀 더 지켜볼 만은 하다.
가계도는 진단서가 아니다. 그래도 데이터는 된다.
제4화 베테랑 시급 1,200엔, 신입 1,300엔: 월급은 실력 측정기가 아니다
오랜만에 간 식당. 예전엔 경험 많은 중장년 파트타이머들이 가게를 돌렸다. 엄청 빨랐다. 주문 받고, 음식 내고, 테이블 치우고, 주방에 소리치고, 다음 손님까지 살핀다.
리모델링 후에 가 보니 젊은 직원 위주의 전혀 다른 팀이 있었다. 그런데 이 팀도 빠르다.
원조 일잘러 군단 → 새 일잘러 군단. 캐릭터를 싹 바꿨는데 처리 속도는 그대로다.
그런데 시급을 보니 약 1,300엔. "이렇게 바쁜데 이것밖에?" 싶다. 다른 회사에서는 현장을 속속들이 아는 베테랑이 여전히 1,200엔대일 수도 있다.
여기서 노동 시장의 버그가 보인다.
바쁨 ≠ 월급
숙련 ≠ 월급
사회에 필요함 ≠ 월급
월급은 고용 형태, 회사 규모, 업종, 회사 내부 임금표, 일손 수급, 이직 가능성, 협상력, 지역, 근속 연수, 직급 같은 '상자'에 크게 좌우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2025년 임금구조기본통계를 보면 정규직과 그 외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대기업 정규직 월급은 평균 414,100엔, 그 외는 251,500엔이었다.[6]
일본은행도 낮은 이직률과 고용 형태마다 다른 임금 결정 방식이 일본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이룬다고 정리했다.[7]
즉 "일을 잘하면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만큼 월급이 오른다"는 시장이 아니었다.
베테랑은 1,200엔에 머무는데, 채용이 어려워지면 신입 공고는 1,300엔이 된다. 실력이 뒤집힌 게 아니다. 가격표를 바꾼 시점이 다를 뿐이다.
요리사를 보면 더 확실하다. 전문 기술이 필요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피크 타임은 전쟁터다. 그래도 일본 후생노동성 직업 정보 사이트 job tag의 2025년 통계로 양식 요리사의 전국 평균 연봉은 379.1만 엔이다.[8]
호텔 프런트도 예약, 체크인, 정산, 안내, 다른 부서와의 연락을 맡고, 곳에 따라 조근·늦은 근무·야간 근무까지 있다.[9] 고급 호텔이라면 요리 이름, 음료, 접객 예절까지 잔뜩 외워야 한다.
하지만 노동 시장은 고생 포인트 교환소가 아니다. 흘린 땀을 들고 창구에 가도 포인트로 바꿔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이직만 해도 연봉이 1.5배로 뛰기도 한다. 주말 사이에 능력이 1.5배가 된 게 아니다. 업종, 회사 규모, 직종, 직급 제도, 이익률이 바뀐 것이다.
사람이 업그레이드된 게 아니라, 진열대가 바뀌었다.
제5화 저출산에 당황하기 전에 "그 제도, 인구가 늘어나는 걸 전제로 만든 거 아니야?"를 따져 보자
저출산과 고령화는 분명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인구 구성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제도가 무너지게 설계되어 있을까?
제도를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조건으로 두면 "사람이 제도에 안 맞게 됐다! 사람을 늘리자!"라는 결론만 남는다. 순서가 거꾸로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2023년 추계에서는 출생·사망 모두 중간 가정일 때 2070년 65세 이상 인구가 38.7%, 약 2.6명 중 1명이 된다.[10]
중요한 건 전체 인구보다 일하는 세대, 세금과 보험료를 내는 세대, 혜택을 받는 세대의 비율이다.
2026년도 사회보장 급여비는 예산 기준 144.1조 엔, GDP의 20.8%다.[11]
이 정도 규모면 "출산율이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는 계획이 되지 못한다.
연금 지급과 부담, 의료비 본인 부담, 돌봄 제도, 고령자 취업,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분담, 생산성,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 인프라 통합, 지자체 고정비까지 함께 봐야 한다.
필요한 건 두 바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쉬운 정책
그리고
사람이 줄어도 잘 무너지지 않는 제도
식당 시급 이야기와 저출산 이야기는 사실 같은 구조였다. 사회는 가끔 상자를 고정해 놓고 사람 쪽을 맞추려 한다.
노동 시장: "이 고용 형태니까 이 월급."
인구 문제: "이 사회보장 제도니까 이 인구 구성이 필요."
하지만 반대도 가능하다.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 임금 제도를 바꾸고, 인구 구조가 바뀌면 사회보장 제도를 바꾸면 된다.
제도는 자연법칙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설정 파일이다.
설정이 현실과 안 맞는다면, 사람을 탓하기 전에 설정 파일부터 열자.
마지막 화 뒹굴다 보니 사회 구조까지 파고들었다
이날의 시작은 "졸려. 친척 집에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싶다"였다.
거기서 나이 들어도 엄청 쌩쌩한 어르신, 넘치는 대화량, 집안의 발달 특성 이야기, 영재라는 말의 뜻, 관심 있는 것에만 빠지는 과집중, 식당 인력 구성, 베테랑과 신입의 시급, 일본의 고용 이중 구조, 저출산과 사회보장 제도까지 흘러갔다.
몸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는 계속 돌았다.
궁금한 걸 줍고 → 검색하고 → 비교하고 → 정리하고 → 다른 분야에 써먹는다.
그리고 결국 "바쁨과 월급은 비례하지 않는다", "능력과 가격표도 비례하지 않는다", "인구와 제도도 고정된 관계가 아니다"라는 같은 구조에 도착했다.
세 살 아이가 묻는다. 왜 누워 있느냐고.
대답은 그대로다. "응, 졸려!"
맞는 말이다.
다만 뒤에서는 일본 사회의 설정 파일을 열어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