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격!”
완성된 글을 받아 독자에게 보여 주는 자동 시스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 목록 확인, 관리 기록 정리, 예전 버전 비교, 발행 여부 확인. 무척 바쁘다.
그리고 귀환 보고가 올라온다.
실행 결과: 성공. 새로 발행 대기 단계에 넘긴 글: 0개.
잠깐. 성벽 밖으로 나간 건 맞나? 출정 신청서 쓰다가 하루가 끝난 것 아닌가?
이쯤 되니 《진격의 거인》 1화의 조사병단이 생각난다. 벽 바깥을 조사하고 돌아온 병사들, 그리고 당시 단장이었던 키스 샤디스의 참담한 보고 말이다.[1][2]
물론 원작에서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프로그램이 멈춘 일과 비극의 무게를 비교하려는 건 아니다. 여기서 닮은 점은 엄청나게 움직였지만 정작 맡은 일을 끝내지 못한 구조다.
거인을 만나기도 전에 서류 작업에 당하다
임무는 단순하다. 글을 받고, 문제없는지 확인하고, 읽을 수 있게 공개하면 된다.
그런데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한다는 일이 늘어난다. 전체 목록을 맞추고, 기록을 정리하고, 지난 결과를 다시 검사하고, 다음 실행을 위한 숫자를 센다.
각각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글 한 편을 공개하기 전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면?
조사병단은 출정 회의에서 시간 초과로 전멸한다.
실제로 어떤 실행에서는 준비와 기록 저장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써서 본래 글 처리를 시작하지 못했다. 다른 실행에서는 공개가 진행되기도 했다. 늘 실패하는 건 아니지만, 부수 업무가 본업을 밀어내는 순간이 있다는 뜻이다.
다음 출정 때 어제의 지도가 사라졌다
시간이 부족해서 일을 다음 차례로 넘기는 건 괜찮다. 어디까지 했는지만 잘 남겨 두면 된다.
문제는 다음 차례를 위한 기록이 저장되지 않는 경로도 있었다는 점이다. 미뤄 둔 일의 순서마저 이어받지 못하면 다음 날 이런 대화가 나온다.
“어제 어디까지 조사했지?”
“기록이 없습니다.”
“좋아. 입구부터 다시 확인하자.”
거인보다 먼저 기록 담당자를 구조해야 한다.
다시 실행할 수 있다는 것과 결국 일을 끝낸다는 것은 다르다. 출정 횟수만 늘고 오래 기다린 글은 계속 뒤로 밀릴 수 있다.
무사 귀환과 임무 완수는 다르다
더 황당한 건 ‘성공’이라는 표시다. 프로그램에서는 오류 없이 끝났거나 시간이 부족해 안전하게 멈췄을 때도 성공으로 기록될 수 있다.
컴퓨터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독자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시작했나? 그렇다. 기록을 정리했나? 그렇다. 안전하게 종료했나? 그렇다.
새 글을 읽을 수 있나? 아직 아니다.
글을 저장한 것, 공개 처리한 것, 실제 웹사이트에 반영된 것 역시 서로 다르다. 그런데 보고서 한 줄이 모두 ‘성공’이면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알 수 없다.
병력을 늘리기 전에 임무부터 끝내자
다른 AI를 단장처럼 세워 매번 실패 원인을 조사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 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단장이 매일 밤 출정 보고서를 고치는 조직이다.
글 한 편을 먼저 끝까지 내보내자. 중간에 멈춘 위치를 기억하자. 한 편이 고장 나도 정상인 글까지 붙잡지 말자. 당장 필요 없는 정리는 공개 뒤에 해도 된다.
성과는 출정 횟수가 아니라 실제로 읽을 수 있게 된 글의 수로 확인하면 된다.
오늘도 화면에는 ‘성공’이 뜬다.
이번에는 출정 서류 말고 글을 가져와 줘.
출처와 설명
[1] 《진격의 거인》 TV 애니메이션 공식 사이트, 1화.
[2] 원작의 성과 보고 대사 해설(일본어). 자동화 사례는 익명화한 실제 실행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