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결혼식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갔더니 “멀리서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먼가?” 싶은 거리였다. 하지만 주최하는 쪽에서는 이동 시간도 쓰고, 하루 일정을 비우고, 옷도 준비해서 실제로 와준 것 자체가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절대적인 거리보다 “안 와도 되는데 와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셈이다.
그런데 계산해 보니 “어?”
행사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으로 정산을 해보니 이상해졌다.
친척에게 교통비 성격의 돈을 받았고, 가족에게서 웬 용돈까지 받았다. 답례품과 기념품도 있었다.
처음에는 “결혼식은 역시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받은 것들을 하나씩 더해 보니 실질 부담이 갑자기 줄어든다.
가족 네트워크에 뜻밖의 캐시백 기능이 붙어 있었다.
식사도 제대로 고급 코스였다. 음료가 포함되어 있었고 술도 무제한이었다.
“결혼식 참석에 큰돈을 썼다”고만 보면 비싸다. 하지만 고급 식사, 술, 연출, 사진, 가족 행사, 답례품, 교통비 지원까지 한 묶음으로 보면 체감이 달라진다.
“비싼 행사에 돈을 썼다”기보다 “고급 식사가 포함된 대형 행사에 갔는데 생각보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에 가까웠다.
축의금은 냈다. 교통비 지원으로 실제 지출이 줄었고, 좋은 음식과 술을 즐겨서 만족감도 예상보다 컸다.
그리고 날아온 “네 결혼식도 기대할게”
그때 친척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결혼식도 기대할게.”
웃음이 나왔다.
감사를 잔뜩 받고, 교통비도 받고, 음식과 술을 즐기고, 답례품까지 챙긴 직후에 정확하게 다음 바통이 넘어왔다.
친척 사회의 무료 배포 이벤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은 네 차례” 조항이 숨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나는 애초에 결혼식을 할지조차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혼하고 싶은지와 큰 결혼식을 열고 싶은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진만 찍을 수도 있고, 가족끼리 식사만 할 수도 있고, 작은 예식을 할 수도 있고,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번 결혼식을 보고 “좋았다, 행복해 보였다”고 느낀 것과 “나도 똑같이 하고 싶다”는 것은 다르다.
오히려 하루를 전부 보고 나니 “주최하는 쪽은 정말 일이 많구나”가 더 잘 보였다.
주최 측은 사실상 가족 총동원 프로젝트
들어 보니 두 사람은 양가 가족에게 상당한 도움을 받았고, 당일에도 가족들이 거의 하루 종일 움직였다고 한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지만, 뒤에서는 안내, 짐, 친척 응대, 이동, 시간 확인 같은 자잘한 일이 계속 생긴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장소만 예약하면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된다.
가족이 통제하려 하지 않고 지원만 해준다면 정말 큰 힘이다.
핵심은 여기다.
준비를 도와주고, 당일에 움직여 주고, 문제가 생겼을 때 지원해 주는 것은 고맙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정할 영역에 가족이 들어와 의견이 사실상 결정권이 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원은 받고 싶다. 주도권까지 넘기고 싶은 것은 아니다.
싫은 것은 가족의 존재가 아니라, 두 사람의 영역에 제3자의 결정권이 당연한 듯 들어오는 상황이다.
음식과 교통비는 감사히 받았다. 내 결혼식을 할지 여부까지 받은 것은 아니다. 그 바통은 일단 내려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