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가라앉지 않고, 피로도 개의치 않으며, 실패해도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누구보다 강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분이 가라앉거나 의욕이 떨어지게 하는 작용은 아예 없애는 편이 좋을까?
이 질문을 생각할 때는 ‘계속하던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것’과 ‘우울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을 구분하면 좀 더 명확해진다. 성과가 나지 않는 시도를 접는 능력에는 쓸모가 있다. 반면 우울증의 고통을 전부 ‘몸이 알아서 적절히 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 도움이 필요한 상태까지 미화하게 된다.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 상태를 상상할 때 흥미로운 지점은 가속 페달만 남겨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는 것이다. 먼저 먹이가 없는 장소를 떠올려 보자.
먹이 없는 곳에서 끈기는 언제 손해가 될까?
어떤 동물이 어제까지 먹이가 있던 곳을 뒤지고 있다고 하자. 오늘은 먹이를 찾을 수 없다. 조금 더 찾으면 나올 수도 있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찾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도 더 쓰고, 다른 장소를 살펴볼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어제 성공했다는 이유로 같은 곳에 계속 머문다면 끈기가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는 순간이 있다. 행동의 강도를 낮추거나 잠시 멈출 수 있으면 선택지가 늘어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기분이 가라앉는 기능은 먹이를 찾다가 손해를 줄이기 위해 진화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사례가 보여 주는 것은 행동을 계속하지 않는 편이 나은 상황도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우울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까지 설명하려면 별도의 증거가 더 필요하다.
‘브레이크’라는 비유는 멈추는 데도 역할이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모든 불편과 고통이 어떤 목적에 맞는 반응이라고 단정하는 데 쓰면 논리가 지나치게 뻗어 나간다.
감기에 걸려 놀 기운이 없을 때, 몸과 뇌는 어떻게 연결될까?
몸의 상태가 행동을 바꾸는 사례로는 감염됐을 때 느끼는 나른함이 있다. 평소라면 기대했을 외출도 번거롭게 느껴지고, 식욕이나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질병 행동’이라고 부른다. Dantzer와 동료들의 종설은 감염에 반응해 면역세포가 내보내는 염증 신호가 뇌에 작용해 행동을 바꾸는 과정을 정리한다.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몸과 뇌가 주고받는 신호로 이해하는 편이 실제에 가깝다.[1]
여기에는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을 이해할 생물학적 단서가 있다. 다만 감기에 걸렸을 때의 일시적인 나른함과 우울증에는 겹치는 증상이 있더라도, 둘을 같은 것으로 다룰 수는 없다. 같은 종설에서도 염증이 지속되는 조건에서는 그 영향을 받기 쉬운 사람에게 우울 증상이 생길 수 있다는, 한층 더 복잡한 관계를 다룬다.[1]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결과에 이르는 경로는 여러 가지다. ‘움직임이 줄었다’는 한 장면만으로는 회복 중인지, 불편과 고통이 길어지고 있는지까지 알 수 없다.
‘쉬면 돌아온다’는 브레이크 비유에 숨어 있는 가정
자전거는 브레이크를 잡으면 속도가 줄고, 놓으면 다시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이렇게 알기 쉬운 작동 방식 때문에 마음도 같은 식으로 움직인다고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기분과 의욕은 손에 닿는 레버 하나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감이 끝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휴가를 내도 즐거움이 돌아오지 않는다. 꼭 필요한 연락을 할 힘마저 없어진다. 이런 상태에서는 ‘잘 멈췄으니 이제 다시 달리면 된다’는 설명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우울증을 기분, 사고, 수면, 식사, 업무 등에 영향을 주는 질환으로 설명한다. 주요우울장애를 진단할 때는 우울한 기분이나 흥미·즐거움의 감소를 포함한 증상이 거의 매일, 적어도 2주 동안 이어졌는지 등을 확인한다.[2] 이는 스스로 진단하기 위한 타이머가 아니라, 진료에서 상태를 확인할 때 참고하는 기준의 일부다.
행동을 전환할 수 있는 것과 꼭 필요한 행동마저 어려워지는 것. 이 차이를 놓치지 않으면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괴로워도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이야기로 흘러가기 어렵다.
쉬고 싶은데 왜 머릿속만 계속 바쁠까?
몸은 움직이지 않는데 머릿속에서는 같은 실패를 계속 곱씹게 된다. 이 역시 단순히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답장하지 못한 이메일을 떠올려 보자. ‘내일은 꼭 답장하자’에서 끝나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또 답장을 못 했네’, ‘상대가 분명 화났을 거야’, ‘나는 늘 이 모양이야’처럼 확인할 수 없는 추측만 늘어날 때도 있다. 생각하는 시간은 긴데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는 정하지 못한다.
이 사례에서 문제는 노력의 양만이 아니다. 생각이 구체적인 선택이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걱정을 더 오래 한다고 해결에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이 손해를 줄이는 쪽을 택했다’는 설명도 만능이 될 수 없다. 무엇에서 벗어날지 당사자가 선택할 수 있다고도, 멈추면 문제가 해결된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에 앞서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부담이 남아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감은 우리가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쉼의 의미를 알아도 쉬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근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 돌봄과 집안일은 계속된다. 일을 줄이면 수입이 걱정된다. ‘환경을 바꿔 보자’는 한마디로는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이 있다.
이럴 때는 개인의 마음이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만 생각하기보다 생활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정할지 살펴보는 편이 도움이 된다. 이번 주 마감은 누구와 상의할 수 있을까? 부담이 큰 일 하나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까? 진료를 생각하고 있지만 예약 전화를 걸기 어렵다면, 절차를 함께 정리해 줄 사람이 있을까?
이런 방법이 치료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혼자 바꿔야 한다’는 지나치게 큰 과제를 한 가지씩 상의해 볼 일로 바꾸는 예가 될 수 있다. 우울증에는 심리치료나 약물치료 등의 치료법이 있으며, 증상과 상황에 맞춰 의료진과 상의해 선택한다.[2]
고통이 계속되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나아지지 않거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비유로 계속 자신을 납득시키기보다 의료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 2주가 지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무적을 꿈꾸기보다, 멈추고 다시 나아갈 방법을 늘리자
기분이 가라앉게 하는 작용을 없애면 무적이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잘 살아갈 조건이 갖춰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먹이 없는 곳을 떠날 때처럼 그만두는 것이 다음 선택으로 이어지는 순간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우울증을 생존을 위한 영리한 브레이크라고 단정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쉬면서 회복하는 상황, 도움을 받아 부담을 줄이는 상황, 치료받는 상황을 모두 하나의 단어에 담을 수는 없다.
브레이크 비유에서 얻고 싶은 것은 모든 불편과 고통에는 반드시 숨겨진 정답이 있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왜 아직도 달리지 못하느냐’고 자신을 탓하기 전에 지금의 상태와 필요한 도움을 확인할 여지다. 계속하기, 쉬기, 상의하기. 쓸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편이 가속 페달만 있는 무적보다 든든하다.
- Dantzer와 동료들, 「From inflammation to sickness and depression: when the immune system subjugates the brain」(2008). 논문 / PubMed 수록 정보. 질병 행동과 염증·우울의 관계를 다룬 종설.
-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Depression. 증상, 진단, 치료에 관한 일반 독자용 설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