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터에서 초등학생쯤 보이는 아이가 낚시를 시작했다. 몇 분 뒤 조용한 수면을 보며 이런 뜻의 말을 했다.
“도파민 꼬맹이는… 못 버텨…!”
“지루해”면 됐을 텐데, 지루해하는 자기 자신까지 분석했다. 이미 완성된 개그다.
여기서 ‘도파민 꼬맹이’는 잦은 자극에 익숙한 아이를 대충 부르는 인터넷 표현이지 진단명이 아니다.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보는지는 이 말만으로 모른다.
어른의 잔소리보다 먼저 끝냈다
어른이 “요즘 애들은 짧은 영상만 봐서”라고 잔소리를 시작할 법한 장면이다. 시작해도 이렇게 될 것 같다.
어른: “너는 계속되는 자극에 너무 익숙해서—”
아이: “알아요. 못 버텨요.”
끝. 선생님이 첫 슬라이드를 열기도 전에 요약본을 제출했다.
낚시는 던지고, 기다리고, 아무 일도 없고, 또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찌가 움직였나? 아니다. 다시 기다린다.
그러다 갑자기 물고기!!!!
작은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이 아이에게는 로딩 화면이 너무 길었나 보다. 게다가 로딩이 끝나면 물고기가 날뛴다. 이상한 게임이다.
감자튀김 옆에서 문명의 이유를 발견한다
다른 날,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중학생쯤 보이는 아이가 친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밥은 진짜 위대해. 밥 없으면 못 살잖아.”
맞다. 감자튀김 옆에서 인류가 먹을 것을 확보하려 애써 온 이유에 도착했다.
“물은 젖게 하네”, “안 자면 졸리네”, “산소 중요하네”와 비슷하게 반박할 수 없다. 그래도 본인에게는 그 순간 큰 발견이었을지도 모른다.
“잠깐, 우리 이거 없으면 못 사는 거 아냐?”
네. 문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몸집 이야기는 필요 없다. 말투만으로도 “밥의 중요성은 이미 박사과정까지 공부했나 봐”라는 가상의 반응이 나올 만큼 설득력 있다.
당연한 내용에 거창한 발표
아이들이 틀려서 웃긴 게 아니다. 몇 분 기다리거나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인생을 정리하는 결론이 나와서 웃기다.
“오늘 뭐 먹지?”라는 회의에서 “인류에게 음식이란 무엇인가” 강연이 시작된 느낌이다. 긴 서론도 없다. “못 버텨.” “밥은 위대해.” 짧고 강하다.
어른도 목욕하고 “목욕 최고”, 여행에서 돌아와 “집이 최고”, 잠을 못 자고 “수면 중요하다”고 한다. 다 알던 사실이다.
알던 것을 그 자리에서 다시 발견하는 셈이다. 어른은 말을 늘려 가리고, 아이는 그대로 말한다.
“밥은 위대해.”
가끔 인간은 이 정도로 말해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