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주의: 이루부루 편과 원작 15권까지의 설정을 다룹니다. ‘어비스는 생명체다’는 공식 확정이 아닌 가설입니다.
이루뮤이는 마을이 되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았고, 욕망과 ‘가치’가 몸과 물건의 모습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파프타가 태어났다.
잠깐. 이거 어비스가 하는 일을 작은 무대에서 먼저 보여 준 거 아닌가?
마을이 된 생명
이루부루가 섬뜩한 이유는 주민들의 생김새 때문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었던 이루뮤이가 여러 생명을 품는 장소 자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 마을에선 누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가 실제 결과로 돌아온다. 보통 마을은 주민의 욕망을 읽고 신체를 바꾸지 않는다. 주민자치회 권한이 이 정도면 이미 공포물이다.
마지막에 파프타가 태어나는 일까지 생각하면, 작품은 이미 생명 → 공간 → 다른 생명의 변화 → 새로운 생명이라는 흐름을 보여 준 셈이다.
거대한 구멍도 하나의 몸이라면?
어비스에는 특이한 규칙이 있다.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오는 것이 위험하며, 상승 부하가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변형 역시 평범한 동굴의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루부루를 알고 나면 어비스의 힘장을 막처럼, 각 층을 장기처럼 상상하게 된다. 구멍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거대한 구조라는 그림이 그럴듯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비슷한 현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동 원리가 같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루부루에서 욕망이 몸을 바꿨다고 해서, 어비스의 저주가 그와 동일하다는 증거가 생긴 것은 아니다.
2000년은 출산 주기일까?
작품에는 기도하는 유골과 관련된 약 2000년 주기의 수수께끼도 있다. 거대 생명체 가설로 보면 성장이나 재생산의 주기처럼 상상할 수 있다.
“2000년마다 무언가를 낳는다.” 듣기만 해도 오싹하다. 문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간격이 정확히 무엇의 주기인지, 유물이나 레그와 관련이 있는지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루부루는 이루뮤이와 소원을 이루는 유물에 얽힌 특별한 비극에서 탄생했다.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어비스와 탄생 과정이 같다고 볼 근거는 없다.
둘이 같은 생물학적 체계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소원이 몸을 바꿀 때’라는 주제를 여러 번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 어비스 전체가 생명이나 소원을 이용해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직접적인 단서가 나와야 이 가설은 더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어비스가 살아 있다는 결론은 아직 이르다. 그래도 사람이 마을이 되는 장면을 보고 나면 거대한 구멍이 그냥 배경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말 하나의 몸이라면 탐굴가들은 거대한 생명체의 뱃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외치는 셈이다.
험한 모험인 줄 알았는데, 애초에 지형이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루부루가 남기는 가장 찜찜한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