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뭘 만들지 모르겠다면: 성능보다 중요한 '첫 아이디어' 이야기

생성형 AI, 정말 대단하다. 코드도 짜고, 글도 쓰고, 자료 조사도 하고, 번역도 한다. 엄청난 양의 지식도 꺼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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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뭘 만들지 모르겠다면: 성능보다 중요한 '첫 아이디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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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재 100명을 뽑았는데, 시킬 일이 없어서 전부 탕비실에 있다

생성형 AI, 정말 대단하다. 코드도 짜고, 글도 쓰고, 자료 조사도 하고, 번역도 한다. 엄청난 양의 지식도 꺼내 쓴다.

이 말만 들으면 내일쯤엔 다들 1인 회사를 10개씩 굴리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기서 딱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뭘 만들지?"

바로 이 한마디다.

아무리 똑똑한 AI가 있어도 할 일이 비어 있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페라리 100대를 세워 놔도 목적지를 안 찍으면 그냥 화려한 주차장일 뿐이다.

AI 시대에 모자라기 쉬운 건 꼭 모델 성능이 아니다.

그 능력에 첫 번째 일을 주는 사람이다.

2. 대단한 발명보다 '첫 불씨'를 만드는 사람이 강하다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면 보통 "아무도 생각 못 한 혁신적인 발명을 번뜩 떠올리는 능력"을 떠올린다.

실제로는 더 소박하지만 더 강한 능력이 있다.

  • 여기 너무 귀찮은데
  • 이거랑 이거 연결하면 안 되나
  • 지금 있는 기능을 다른 데 쓸 수 없나
  • 애초에 이 작업은 왜 하는 거지
  • 일단 제일 간단하게 만들어 보면 뭐가 보일까

이런 불씨를 만드는 능력이다.

첫 아이디어는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중요한 건 다음 생각이 올라설 발판을 놓는 것이다.

빈 책상 앞에서는 이야기가 잘 시작되지 않는다. 그런데 엉성해도 시제품 하나를 올려 두면 "여기 이상한데", "이건 쓸 만하다", "그럼 다음엔 이렇게"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첫수는 정답이 아니다.

다음 정답을 잔뜩 뽑아내는 장치다.

3. '아이디어력'은 능력 하나가 아니다

이 능력을 쪼개 보면 적어도 이런 부품이 있다.

능력 하는 일
발산 문제 하나에서 여러 가능성을 꺼낸다
유추 다른 분야의 방식을 가져온다
재조합 이미 있는 A+B로 C를 만든다
문제 발견 주어진 문제보다 앞에 있는 불편을 찾는다
관점 바꾸기 '진짜 풀어야 할 질문'을 다시 잡는다
수렴 나온 아이디어 중 실제로 만들 것을 고른다
쪼개기 AI가 처리할 수 있는 크기의 일로 나눈다
착수 일단 첫 결과물을 만든다
다시 떠올리기 돌아가는 결과물을 보고 다음 걸 떠올린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발산적 사고는 이 중 중요한 일부다. APA는 발산적 사고를, 흔히 쓰거나 배운 방식에서 벗어난 전략으로 문제를 풀고 결정을 내리는 창의적 사고라고 설명한다.[1]

다만 발산적 사고 검사 점수만으로 현실의 창의성 전체를 잴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2]

결국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다"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디어를 다시 잡고, 고르고, 만들어 보고, 또 생각하는 데까지 가야 실전이다.

4. 창의성은 '떠올리기 → 살펴보기 → 다시 떠올리기'의 반복이다

창의적 사고 연구에는 아이디어를 한 번에 완성하는 게 아니라, 먼저 후보를 만들고 그걸 살펴보고 평가한 뒤 필요하면 다시 만드는 단계로 돌아간다는 관점이 있다. Geneplore 모델이라고 부른다.[3]

이걸 AI로 뭔가 만드는 과정에 대입하면 정말 이해가 쉽다.

  1. 떠올린다
  2. AI랑 이야기하며 다듬는다
  3. 대충 기획을 적는다
  4. 만든다
  5. 돌려 본다
  6. "이게 아닌데" 하고 깨닫는다
  7. 다른 방향을 떠올린다
  8. 다시 만든다

즉, 아이디어는 만들기 전에 완성될 필요가 없다.

만드는 과정 자체가 생각하는 과정이다.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여기다.

시제품 하나에 3개월이 걸리던 시절에는 머릿속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나서 시작하고 싶어진다.

30분 만에 모양이 나오는 시절에는 시제품 자체를 생각 메모처럼 쓸 수 있다.

아이디어 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5. "멀티태스킹 못 해"는 혼자 다 할 때만 맞는 말이다

"그렇게 여러 개를 동시에 못 하는데요."

맞는 말이다.

사람이 프로젝트 10개의 기획, 코드, 조사, 확인, 수정을 한꺼번에 머리에 올리면 머릿속 브라우저 탭이 전부 하얗게 멈춘다.

그럼 전제를 바꾸면 된다.

사람이 멀티태스킹할 필요는 없다. 시스템이 동시에 돌리면 된다.

사람이 쥐고 있을 건

  • 뭘 하고 싶은지
  • 뭐가 중요한지
  • 어디까지 괜찮은지
  • 어떤 결과를 쓸지

이 정도면 된다.

그다음엔

  • 조사
  • 기획서 정리
  • 개발
  • 테스트
  • 번역
  • 점검

을 따로 돌릴 수 있는 만큼 나눠서 AI에게 맡긴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약해서 AI 활용은 무리야"가 아니다.

오히려 멀티태스킹이 약할수록 일을 머리 밖으로 꺼내 각자 맡을 역할로 나눠 두는 방식이 더 값지다.

6. 거대한 지식은 자재 창고일 뿐, 설계도가 아니다

AI와 데이터가 아무리 거대해도, 그것만으로 "뭘 만들어야 하는지"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목재, 철근, 유리, 공구, 중장비까지 다 갖춘 초대형 건축 자재 마트를 떠올려 보자.

대단하다.

하지만 손님이 "뭘 지을지"를 정하지 않으면 자재 마트는 계속 자재 마트일 뿐이다.

AI도 비슷하다.

정보를 찾아 준다. 비교해 준다. 코드를 짜 준다. 아이디어도 낸다.

그런데

"이 불편을 없애고 싶다" "이 둘을 이어 보면 재밌겠다" "이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싶다"

같은 방향이 들어가는 순간, 능력이 일로 바뀐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AI보다 많이 알 필요는 없다.

AI에게 "여기를 파 봐"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된다.

7. 문제를 풀기 전에, 문제를 다시 짜는 사람이 강하다

디자인 연구에서는 복잡하고 답이 열린 문제를 다룰 때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실천으로 논의돼 왔다. Dorst는 조직이 어려운 문제 상황을 다룰 때 문제를 보는 관점 자체를 새로 짜는 리프레이밍에 주목한다.[4]

AI 시대엔 이게 더 중요해진다.

AI에게 "이거 해 줘"라고 하면, 부탁한 문제를 엄청난 속도로 풀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무섭다.

문제를 잘못 잡은 채로, 그럴듯한 정답을 초고속으로 찍어낼 수 있다.

정말 좋은 질문은

"이 작업을 어떻게 더 빨리 하지?"

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작업, 애초에 필요해?" "사용자가 원하는 건 작업이 빨라지는 거야, 아니면 작업 자체가 없어지는 거야?" "다른 쪽에서 풀 수는 없어?"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AI가 답을 잘할수록, 사람이 문제를 어떻게 잡느냐의 효과가 커진다.

8. 빨리 만들수록 아이디어가 늘어난다. 은근히 엄청난 일이다

생성형 AI가 특정 지식 노동에서 시간을 줄이고 품질을 높였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Noy와 Zhang의 실험에서는 전문적인 글쓰기 과제에서 평균 작업 시간이 40% 줄고, 평가 품질은 18% 올랐다.[5]

물론 모든 일이 40% 빨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건 다른 데 있다.

시도하는 비용이 내려가면, 시도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많이 시도할수록 실제 결과물에서 얻는 정보도 늘어난다.

  • 진짜 쓸 만한가
  • 생각보다 별로인가
  • 다른 용도가 더 나은가
  • 옆에 있는 기능이랑 이어지나
  • 사용자가 어디서 헤매나

이런 정보는 머릿속에서만 생각해서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떠올리기 → 만들기 → 지켜보기 → 다시 떠올리기

이 고리가 짧아질수록 아이디어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줄줄이 이어진다.

만드는 속도는 단순한 생산성이 아니다.

아이디어 엔진의 회전수이기도 하다.

9. 다만 AI에게 아이디어를 전부 맡기면, 다들 같은 산에 오를 수 있다

생성형 AI는 아이디어를 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Doshi와 Hauser의 실험에서는 AI 아이디어 도움을 받은 개인의 단편 소설이 평균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AI 도움을 받은 작품끼리는 서로 더 비슷해져서 전체적인 다양성은 줄었다.[6]

이 부분이 중요하다.

AI에게 매번 "재밌는 아이디어 10개만"이라고만 물으면, 다들 같은 관광버스에 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의 몫은 사라지지 않는다.

  • 내가 직접 귀찮다고 느낀 것
  • 현장에서 발견한 어색함
  • 지금 쓰는 시스템의 버릇
  •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비유
  • 엉뚱한 조합
  • "다들 그렇게 하는데, 진짜 그게 맞아?"라는 반문

이런 나만의 재료가 AI의 거대한 지식에 방향과 개성을 준다.

AI에게 전부 생각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엉뚱한 돌을 하나 던지고, AI가 물결을 키우게 하는 거다.

그쪽이 더 재밌다.

10. 최강의 루프: 떠올리기 → 한 문장 → 나누기 → 맡기기 → 확인 → 또 떠올리기

결국 실무에서는 이 정도로 단순해도 된다.

① 계기 "이게 이렇게 되면 편하지 않을까?"

② 한 문장 무엇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한 문장으로 적는다.

③ 나누기 조사, 설계, 개발, 확인처럼 따로 돌릴 수 있는 역할로 나눈다.

④ 맡기기 AI에게 담당을 넘긴다. 사람이 전부를 한꺼번에 끌어안지 않는다.

⑤ 결과물 글, 화면, 코드, 결과 등 일단 눈에 보이는 걸 만든다.

⑥ 다시 확인 정말 노린 대로 됐는지 읽어 보고, 눌러 보고, 검증한다.

⑦ 다시 떠올리기 "이게 되면 다음엔 이것도 되겠는데?"가 나온다.

마지막 ⑦이 있어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를 만들면 그게 다음 아이디어의 재료가 된다.

기능 A가 생긴다. A가 있으니 B가 떠오른다. B가 생기면 A+B=C가 된다. C가 생기면 "아예 서비스 전체를 D로 다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가 된다.

처음엔 작은 불씨였는데, 정신 차려 보면 발전소가 서 있다.

11. 함정: 떠올리는 속도가 정리하는 속도를 앞지를 때

이 방식에는 뚜렷한 부작용이 있다.

아이디어가 줄줄이 나오고 만드는 것도 빠르면, 시스템이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다.

그리고 어느 날 배선을 열어 본다.

이거 누가 만들었어?

어제의 나다.

해결책은 아이디어를 멈추는 게 아니다.

  • 기준이 되는 원본을 너무 늘리지 않는다
  •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를 두 번 만들지 않는다
  • 기존 기능에 합칠 수 있으면 합친다
  • 서로 독립된 작업만 동시에 돌린다
  • 만든 뒤에는 반드시 다시 확인한다
  • 중요한 변경에는 품질 점검 관문을 둔다
  • "만들 수 있다"와 "지금 만들어야 한다"를 구분한다

빠른 아이디어에는 빠른 정리가 필요하다.

액셀을 약하게 밟기보다, 핸들과 브레이크를 튼튼하게 하자.

12. 결론: AI 시대의 경쟁력은 "AI를 쓸 줄 아는 것"보다 "AI에게 일을 만들어 주는 것"

AI 모델 성능은 계속 올라간다.

아는 것도 늘어난다. 코드도 글도 빨라진다. 여러 AI를 동시에 돌리는 것도 쉬워진다.

그러면 사람에게 남는 귀한 능력도 조금씩 옮겨 간다.

"전부 혼자 만들 수 있다"에서

뭘 만들지 찾아낸다.
첫 계기를 만든다.
문제를 다시 짠다.
일을 나눈다.
AI에게 맡긴다.
실제 결과물을 본다.
거기서 다음을 떠올린다.

로.

AI는 거대한 능력이다.

하지만 능력은 일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은 AI보다 코드를 빨리 짜는 사람만이 아니다.

"어, 이거 만들 수 있는 거 아냐?"라고 첫마디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다.

천재 AI 100명을 뽑은 회사에 가장 먼저 필요한 건 101번째 천재가 아니다.

할 일 목록에 첫 줄을 적는 사람이다.


  1. APA Dictionary of Psychology, “divergent thinking. dictionary.apa.org
  2.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The science behind creativity” — notes that divergent-thinking measures are useful but do not map cleanly onto real-world creativity as a whole apa.org
  3. Ward, T. B., Smith, S. M., & Finke, R. A., “Creative Cognition,” in Handbook of Creativity; see also Geneplore descriptions of iterative generative and exploratory processes cambridge.org
  4. Dorst, K. (2011). “The core of ‘design thinking’ and its application.” Design Studies, 32(6), 521–532 doi.org
  5. Noy, S., & Zhang, W. (2023). “Experimental evidence on the productivity effects of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Science, 381(6654), 187–192 doi.org
  6. Doshi, A. R., & Hauser, O. P. (2024). “Generative AI enhances individual creativity but reduces the collective diversity of novel content.” Science Advances, 10(28), eadn5290 do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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