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 요약
AI가 잘 만들수록, 내 가치는 “전부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에서 점점 멀어진다.
대신 중요해지는 건 결과물을 보고 “뭔가 별로다”, “재미없다”, “이건 안 누를 것 같다”를 빨리 알아채는 힘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이유, 목표, 지켜야 할 조건으로 바꿔서 AI에게 방법을 찾게 하고, 실물을 보고 다시 판단하는 힘이다.
한마디로 코드를 내가 다 짜는 게 아니라 이렇게 돌린다.
“뭔가 별로인데?” 알아채기 → AI랑 이야기하며 정리하기 → 처음부터 다시 기획하기(0→1) → 만들기 → 실물 확인하기 → 다시 “뭔가 별로인데?” 알아채기
겉으로만 보면 “불평만 하는 사장”이다.
하지만 픽셀 하나하나까지 지시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아니다. 목표와 품질 기준은 사람이 쥐고, 방법 찾기와 만들기는 AI에게 맡기는 방식에 가깝다.
1. 시작은 “정리는 잘 돼 있는데 진짜 재미없다”였다
어느 사이트 첫 화면에 카테고리 이름과 글 개수가 깔끔하게 줄 서 있었다.
정리도 잘 돼 있고, 고장 난 곳도 없고, 왜 이렇게 했는지 설명도 된다.
그런데 보자마자 나온 말은
“이거, 재미없다”
였다.
이런 느낌은 골치 아프다.
“버튼이 안 눌린다” 같은 분명한 오류가 아니다. 테스트도 통과하고, 정해 둔 규칙을 어긴 것도 없다. 그런데 손이 안 간다.
대화형 AI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그 느낌의 정체가 조금씩 말로 정리됐다.
운영자가 “인간관계 98개”, “판단·비교 78개”처럼 쌓아 둔 글 개수를 보여 줘도, 처음 온 사람이 궁금한 건 개수가 아니다.
“지금 나한테 재밌는 거 있어?” “이런 고민이면 어디를 누르면 돼?” “딱히 찾는 건 없는데 뭔가 발견하고 싶어”
이쪽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획하는 AI에게 문제 전체를 다시 넘겼더니, 첫 화면이 카테고리 창고에서 지금 기분이나 필요에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메시지 카드 모양의 입구로 바뀌었다.
화면 꾸밈(CSS)을 조금 손본 게 아니다.
“첫 화면은 뭘 위해 있는가”를 처음부터 다시 정한 것이다.
2. 사람이 하는 일이 “진상 고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AI가 만드는 것까지 하게 되면, 사람이 하는 일은 묘하게 보인다.
“여기 좀 촌스럽다” “설명은 맞는데 누르고 싶지가 않아” “기능은 있는데 써 보면 별로야” “좀 더 재밌게 안 돼?”
말만 떼어 놓고 보면 꽤 진상 고객이다.
그런데 진짜 위험한 간섭은 이런 거다.
“여백 12px로 해” “카드는 무조건 3열로” “이 문장은 여기 넣어”
방법까지 사람이 못 박아 버리는 것.
이번엔 반대였다.
사람이 쥔 건 “이게 좋은가”, “목적에 맞나”, “뭐가 거슬리나”라는 판단 쪽이다.
어떻게 고칠지는 기획 AI와 개발 AI에게 넓게 맡겼다.
그러니까 진상 고객이 아니라, 사실은 제품 책임자, 편집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품질 검사를 혼자 다 하고 있는 셈이다.
키보드는 조용해졌는데 직함만 갑자기 무거워졌다.
3. “뭔가 별로”는 성능 좋은 경보기지만, 그대로 작업 지시가 되진 않는다
“왠지 싫다”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대로 개발 AI에게 던지면 위험하다.
그냥 내 취향일 수도 있고, 다른 데를 고친 부작용일 수도 있다. AI는 불평을 그대로 충실하게 만들어서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AI와 이야기하며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최소한 이 순서로 바꾼다.
- 증상: 뭘 보고 “싫다”고 느꼈나
- 원인 후보: 왜 그렇게 느꼈나
- 독자: 누가 불편한가
- 바라는 모습: 뭘 할 수 있게 되면 좋은가
- 지킬 것: 망가지면 안 되는 건 뭔가
- 끝난 기준: 뭘 보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나
“첫 화면이 재미없다”라면
“운영자가 나눈 분류가 너무 앞에 나와 있어서, 처음 온 사람이 자기 목적에서 글을 찾기 어렵다. 글 개수가 아니라 기분이나 필요에서 둘러볼 수 있는 입구로 바꾸고 싶다”
까지 구체적으로 만든다.
여기까지 오면 불평이 설계의 재료가 된다.
4. 이야기하며 정리하면 “내 취향”이 “확인해 볼 수 있는 가설”이 된다
중요한 건 내 느낌을 무조건 옳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싫다” 와 “사용자에게 나쁘다” 는 같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연구, 기존 디자인 원칙, 반대 사례, 실제 이용 데이터를 들이대 본다.
예를 들어 이렇게 쪼갠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싫은 건가?” “운영자 편한 대로 나눠서 싫은 건가?” “목적 없이 온 사람이 들어갈 데가 없어서 싫은 건가?” “자주 오는 사람한텐 오히려 목록이 더 빠르지 않나?”
이 과정을 거치면 사람의 감각은 살리면서, 감각이 폭주하는 것만 막을 수 있다.
“뭔가 별로”는 경보기.
이야기하며 정리하는 건 진단.
만드는 건 치료.
경보가 한 번 울렸다고 바로 수술실로 뛰어가지 않는다.
5. “이케아나 코스트코처럼”은 대충 하는 말이 아니라 찾을 범위를 좁혀 준다
구체적인 예시는 힘이 세다.
“더 재밌게 해 줘”만으로는 AI가 찾아야 할 범위가 너무 넓다.
반면에
“큰 매장을 걷다 보면 살 생각 없던 물건까지 눈에 들어오는 느낌” “카테고리 목록이 아니라, 보다 보면 뭔가 발견하게 되는 느낌”
이라고 말하면 원하는 경험이 훨씬 분명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매장 화면을 베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색, 여백, 카드 모양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생각지 못한 발견” “이리저리 둘러보기” “다음 걸 보고 싶어지는 느낌” “쌓아 둔 재고가 아니라 경험을 보여 주기”
처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다.
예시는 답을 정해 버리려고 쓰는 게 아니라 방향을 정하려고 쓴다.
그래야 AI도 아직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다.
6. 처음부터 기획하는 AI와 만드는 AI를 나누면 강해진다
이미 있는 오류를 고치는 거라면 매번 거창한 기획 회의는 필요 없다.
원인을 찾고, 고치고, 테스트하면 된다.
하지만 “첫 화면을 근본부터 재밌게 만들기”처럼 0→1에 가까운 일이라면, 만들기 전에 한 번은 강한 기획 AI를 거칠 가치가 있다.
역할을 나눈다.
대화형 AI는 불편한 느낌을 쪼개고 필요한 걸 정리한다.
0→1 기획 AI는 선택지, 구조, 경험 설계를 찾는다.
개발 AI는 코드, 테스트, 다른 데가 안 망가졌는지 확인을 맡는다.
사람은 목적, 지킬 것, 우선순위, 채택 여부를 쥔다.
계획서만 만드는 AI 회의를 몇 바퀴씩 돌릴 필요는 없다.
기획은 실제로 만들어질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7. 연구를 봐도 “사람+AI면 무조건 최강”은 아니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2024년 Nature Human Behaviour에 실린 메타분석은 사람 혼자, AI 혼자, 사람+AI를 직접 비교한 106개 실험, 370개 효과 크기를 모아 분석했다.[1]
평균적으로 사람+AI는 사람 혼자보다 나았다.
하지만 “사람과 AI 중 더 잘한 쪽”과 비교하면, 사람+AI는 평균적으로 더 못했다.
마지막에 사람을 붙인다고 무조건 강해지는 게 아니다.
게다가 판단을 내리는 과제에서는 함께했을 때 성적이 떨어지기 쉬웠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과제에서는 상대적으로 함께하는 쪽이 유망했다.
결국 중요한 건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누가 뭘 맡느냐
다.
사람이 마지막에 전부 승인만 하는 것도, AI에게 전부 떠넘기는 것도 아니다.
일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
8. AI가 잘하는 범위는 들쭉날쭉하다
2026년 Organization Science에 실린 실험에서는 지식 노동자 758명을 대상으로, AI가 잘하는 범위 안의 18개 과제에서 AI를 쓴 사람이 평균 12.2% 더 많은 과제를 끝냈고, 25.1% 더 빨랐고, 품질도 더 좋았다.[2]
하지만 AI가 잘하는 범위 밖에 있는 복잡한 경영 문제에서는 AI를 쓴 사람이 정답을 맞힐 확률이 19% 낮았다.
겉보기엔 똑같은 “머리 쓰는 일”인데, AI가 도움이 되는 일과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일이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이걸 “들쭉날쭉한 경계”라고 부른다.
그래서 일을 맡길 때는
“AI가 똑똑하니까 맡긴다” 가 아니라 “이런 일은 AI에게, 여기는 사람이 판단한다”
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뭔가 별로인 걸 알아채기, 목표 정하기, 큰 득실 판단, 전체가 맞아떨어지는지는 사람.
대량으로 찾아보기, 다른 안 만들기, 글로 정리하기, 만들기, 기계적인 검사는 AI.
적어도 지금은 이렇게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9. 사람이 “초안 쓰는 사람”에서 “고치는 사람”으로 옮겨 가는 건 연구와도 맞는다
2023년 Science에 실린 실험에서는 전문직 453명에게 글쓰기 과제를 줬는데, 생성형 AI를 쓴 쪽이 평균 작업 시간이 40% 짧고 품질 평가는 18% 높았다.[3]
2025년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실린 고객 상담 연구에서도, 5,172명의 실제 현장 데이터에서 AI 도움으로 시간당 처리 건수가 평균 15% 늘었다. 특히 경력이 짧은 사람에게 효과가 컸다.[4]
물론 이 연구들이 “사장이 별로라고만 말하면 회사가 굴러간다”를 증명한 건 아니다.
다만 초안, 반복 업무, 후보 만들기, 글로 정리하기에 드는 품이 줄면, 사람의 시간을 “뭘 만들지”, “뭘 고를지”, “뭐가 이상한지”로 옮기기 쉬워진다는 방향과는 맞는다.
손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 없어지는 게 아니다.
손으로 만드는 것만이 발목을 잡는 일이 아니게 될 뿐이다.
10. 가장 큰 함정은 불평을 하나하나 다 고치다가 전체가 엉망이 되는 것
카드를 고친다.
광고를 고친다.
관련 글을 고친다.
검색을 고친다.
하나하나는 다 좋아졌다.
그런데 사이트 전체는 어수선해졌다.
이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거슬리는 걸 하나씩 없애는 방식에는, 부분만 좋아지고 전체는 나빠지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한 발 물러서서 위에서 봐야 한다.
“누가 오는가” “뭘 하러 오는가” “처음에 뭘 누르게 할까” “어디를 둘러보게 하고 싶은가” “마지막에 뭘 가져가게 하고 싶은가” “사실은 없애는 게 나은 기능은 없나”
부분 개선과 전체 점검은 따로 해야 한다.
게다가 사람도 AI 제안에 끌려간다. 사람과 AI의 판단이 서로를 부풀려서 치우침이 커지는 되먹임을 보여 준 실험도 있다.[5]
그러니 “AI도 그렇게 말했어”는 증거가 아니다.
연구, 실제 사용, 반대 사례, 바깥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11. “알아서 잘 해 줘”가 통하는 건 서로 아는 게 쌓인 뒤다
“알아서 잘 해 줘”는 사실 꽤 위험한 지시다.
아무 맥락이 없으면 그냥 뽑기다.
그런데 다음이 공유돼 있으면 뜻이 달라진다.
목표 뭘 좋게 만들고 싶은가.
하기 싫은 것 절대 원하지 않는 건 뭔가.
지킬 것 망가뜨리면 안 되는 규칙, 비용, 안전, 운영 조건은 뭔가.
참고 예시 어떤 경험을 노리는가.
끝난 기준 뭘 보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나.
이게 쌓이면 “알아서 잘 해 줘”는 줄임말이 된다.
떠넘기는 게 아니다.
길게 쌓인 공유 맥락을 한마디로 불러내는 것이다.
손발 잘 맞는 팀에서 “늘 하던 대로”가 통하는 것과 같다.
AI와도 이제야 그게 되기 시작했다.
12. 개발 AI가 멈춰도 개발 전체를 멈추지 않는다
개발 AI 앱이 멈췄다.
사용 한도가 초기화되기 직전이었다.
“지금 다 밀어 넣고 싶었는데”
이런 멈춤은 은근히 아프다.
그런데 여기서 쓸 만한 답이 하나 더 나온다.
생각하는 줄과 실행하는 줄을 나눈다.
개발 에이전트를 못 쓰는 시간에도
거슬리는 걸 모은다. AI와 이야기하며 정리한다. 원인 가설을 세운다. 연구로 뒷받침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끝난 기준을 적는다.
여기까지는 할 수 있다.
복구되는 순간 개발 AI는 생각부터 시작하지 않고, 이미 정리된 일을 위에서부터 처리하면 된다.
서비스 하나가 멈췄다고 팀 전체의 머리가 멈추지 않는다.
비용 절약도 되지만, 그보다 장애에 강해진다는 얘기다.
13. AI 시대의 “사장”은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이 방식을 한 바퀴 돌려 보면 사람의 역할이 꽤 달라 보인다.
코드를 전부 못 짜도 된다.
처음부터 완벽한 화면을 못 그려도 된다.
해결책을 몰라도 된다.
다만
“이건 아니다” “왜 아닌가” “누구에게 뭐가 좋아져야 하나” “뭐는 망가지면 안 되나” “나온 안을 써도 되나”
는 쥐고 있어야 한다.
AI는 해결책을 잔뜩 낼 수 있다.
만들 수도 있다.
검사도 꽤 한다.
그래도 “이 제품에서 뭐가 좋은 건가”라는 기준까지 통째로 넘기면, 뭘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자체가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의 일은 없어진다기보다 위쪽으로 압축된다.
옛날 사장님 말투로 하면
“내가 다 만든다”
가 아니라
“이건 아니야. 이유는 이거고. 가려는 방향은 저쪽이야. 나머진 제일 좋은 방법으로 해 줘”
로 돌린다.
드디어 “알아서 잘 해 줘”가 기술이 되기 시작했다.
[1] Vaccaro, M., Almaatouq, A., & Malone, T. (2024). When combinations of humans and AI are useful: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Nature Human Behaviour, 8, 2293–2303. https://doi.org/10.1038/s41562-024-02024-1
[2] Dell’Acqua, F., et al. (2026). Navigating the Jagged Technological Frontier: Field Experimental Evidence of the Effects of Artificial Intelligence on Knowledge Worker Productivity and Quality. Organization Science, 37(2), 403–423. https://doi.org/10.1287/orsc.2025.21838
[3] Noy, S., & Zhang, W. (2023). Experimental evidence on the productivity effects of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Science, 381(6654), 187–192. https://doi.org/10.1126/science.adh2586
[4] Brynjolfsson, E., Li, D., & Raymond, L. (2025). Generative AI at Work.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40(2), 889–942. https://doi.org/10.1093/qje/qjae044
[5] Glickman, M., & Sharot, T. (2025). How human–AI feedback loops alter human perceptual, emotional and social judgements. Nature Human Behaviour, 9, 345–359. https://doi.org/10.1038/s41562-024-0207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