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한참 이야기하고 나면 묘하게 아는 것이 많아진 기분이 든다. 분명 동물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수면이나 일하는 방식까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느낌은 즐겁다.
그런데 화면을 닫고 나면 막상 설명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대화를 배움으로 이어가려면 답을 읽는 도중에 자신의 예상을 말하고, 근거를 확인하고, 마지막에는 직접 설명해 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AI와 이야기하기만 해도 똑똑해질까?”라는 질문의 답은 대화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글에서는 하나의 예를 따라가며 질문을 깊게 만드는 법, 출처를 확인하는 법,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실제 이해인지 점검하는 법을 살펴본다.
“두더지도 우울할 때가 있을까?”에서 질문을 나눠 보기
시작은 가벼워도 좋다. “두더지도 우울할 때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출발해 보자. AI가 동물의 스트레스 연구를 소개한다면, 다음 질문이 꼭 “또 어떤 동물이 그래?”일 필요는 없다.
- 그 연구에서는 무엇을 측정해서 ‘우울증 유사’ 상태라고 불렀을까?
- 활동이 줄어든 이유를 피로나 운동 능력 저하와 어떻게 구분했을까?
- 그 결과로 인간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으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확인해 볼 수 있는 질문으로 바뀐다. 가령 파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라면, “파리도 사람과 똑같이 우울해지는구나”라고 받아들이기 전에 실험에서 실제로 어떤 행동을 관찰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거기서 겨울잠, 계절에 따른 기분 변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태로 이야기를 넓힐 수도 있다. 다만 이야기를 서로 연결했다면, 그 연결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하나씩 살펴봐야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나란히 놓았다고 해서 같은 원리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더 긴 답 대신, 다음에 파고들 질문을 부탁하기
대화를 깊게 만들려고 “더 자세히 알려 줘”를 반복하다 보면 설명만 길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이 걸리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 보자.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을 신체 능력, 환경, 학습된 행동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설명해 줘. 각 설명을 확인하려면 무엇을 관찰해야 할까?”
이렇게 물으면 다음에 무엇을 조사할지 고르기 쉽다. 전문 용어가 나오면 “이 용어를 쓰면 어떤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라고 물어도 좋다.
자신의 예상도 먼저 꺼내 보자. “피곤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면 충분할 것 같아.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걸 보여 주려면 어떤 관찰 결과가 필요할까?” 예상이 맞든 틀리든, 어디를 고쳐 생각해야 할지 보인다.
처음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만들 필요는 없다. “어디를 모르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한 뒤, 이해를 확인할 질문을 하나씩 해 달라고 부탁하는 방법도 있다.
설명이 매끄럽게 이어질수록 출처로 돌아가기
이 예에서 주의할 점은 ‘활동이 줄어든다’는 공통점이 무엇이든 설명하는 말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 출처가 무엇을 뒷받침하는지 나눠 볼 필요가 있다.
- Ries 등의 파리 실험은 진동 스트레스를 받은 뒤 자발적인 행동이 감소했다고 보고한다.
- Dantzer 등의 종설은 염증, 질병에 따른 행동 변화, 우울증 사이의 관계를 정리한다.
-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는 계절성 정동장애를 계절에 따라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는 우울증의 한 유형으로 설명한다.
- Suddendorf와 Corballis의 1997년 논문은 과거나 미래를 떠올리는 ‘심적 시간 여행’을 논한다.
여기서 곧바로 “겨울철 우울증은 약한 겨울잠이다” 또는 “우울증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진화했다”라고 정리하면, 연구 소개에 비유와 가설이 섞인다. ‘저전력 모드’라는 비유가 편리하더라도 그 자체로 원인이나 치료를 설명할 수는 없다. 또 1997년의 논의를 인용했다고 해서 다른 동물의 능력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 결론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AI에는 이렇게 부탁할 수 있다.
“지금 설명을 연구에서 확인한 내용, 연구자의 가설, 설명을 위한 비유로 나눠 줘. 각 연구는 논문 제목, 연도, 연구 대상, 측정한 항목, URL을 알려 줘.”
그다음 링크를 열어 논문 제목과 저자를 확인하고, 초록이나 해당 부분을 읽는다. 링크가 실제로 존재하더라도 그 주장의 근거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근거를 찾지 못한 주장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 둔다. 이 작은 수고가 그럴듯한 이야기와 연구로 뒷받침된 지식을 구분해 준다.
쓸모 있는 모델은 다음에 무엇을 확인할지 보여 준다
여기서 말하는 모델은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에 무엇을 시도할지 생각하기 위한 간단한 지도다.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거대한 이론일 필요는 없다.
가령 “책상 앞에 앉아도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는 평범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나는 집중력이 부족해”에서 끝내는 대신, 가능한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눠 본다.
- 알림이 자꾸 와서 중간중간 주의가 흐트러진다.
- ‘자료 만들기’라는 과제가 너무 커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졸려서 글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유에 따라 시도할 것도 달라진다. 알림을 끄고 짧은 시간 동안 일해 본다. 우선 소제목 세 개를 적는다. 일을 잠시 멈추고 최근 수면 상태를 돌아본다. 여기서는 일상에서 일하는 방식을 조정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 기분이나 수면 문제가 계속되어 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도 선택지가 된다.
두더지에 빗대자면, “파 볼 땅도 없는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그래서, 파 볼 땅은 어디 있는데?”를 찾아보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애초에 꼭 파야 하나?”라고 물어도 좋다.
재미있는 비유의 가치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 준다는 데 있다. 실제로 조건 하나를 바꾸고 일을 시작하기가 얼마나 쉬워졌는지 살펴본다. 잘되지 않으면 지도를 다시 그리면 된다.
화면을 닫고도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예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AI의 설명을 읽고 “그렇구나” 싶어지면 짧게 점검해 보자.
먼저 화면을 닫고 핵심을 자신의 말로 세 문장에 담는다. 다음으로 대화에 나오지 않았던 예를 하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 설명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를 꼽아 본다.
“조건이 달라지면 행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관점을 정리 정돈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건을 버릴지 판단하기 전에, 애초에 둘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물건 둘 곳의 문제로 설명하려 들면 설명이 부실해진다.
자신의 설명을 AI에게 다시 보여 줄 때는 “매끄럽게 고쳐 줘”보다 이렇게 부탁해 보자.
“내 설명에서 빠진 부분과 근거보다 강하게 단정한 부분을 짚어 줘. 바로 정답을 쓰지는 말고, 내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을 하나 해 줘.”
그러면 답을 옮겨 적는 작업에서 자신의 이해를 고치는 작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생각의 근력 운동’은 이런 활용법을 가리키는 비유다. 대화가 얼마나 길었는지, 전문 용어를 몇 개 모았는지를 성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대화를 마칠 때 세 가지만 남기기
흥미로운 이야기를 끝없이 넓혀 가는 것도 즐겁다. 다만 나중에 활용하고 싶다면 마지막에 짧은 메모를 남겨 두자.
- 지금 설명할 수 있는 것: 활동이 줄었다는 관찰과, 왜 줄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각각 확인해야 한다.
- 아직 모르는 것: 이 대화에서 소개한 실험은 다른 조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 다음에 할 일: 인용된 논문의 초록을 읽고 AI의 설명과 비교한다.
이렇게 하면 다음에 책이나 논문을 펼칠 때 어디서 시작할지 알 수 있다. AI와 대화하며 궁금증의 지도를 만들고, 출처를 확인하고, 읽은 뒤에는 지도를 고쳐 그린다. 어디를 자세히 읽어야 할지 보이면 자료를 읽는 시간도 더 알차게 쓸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때까지
AI와 대화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사소한 궁금증에서 출발해 예상하지 못한 이웃 분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두더지 이야기로 시작해도 좋고, “정리 정돈은 왜 시작하기 전이 그렇게 귀찮을까?”여도 좋다.
예상을 하나 내놓는다. 근거를 직접 열어 본다. 다른 예로 생각해 본다. 자신의 말로 설명하고, 필요하면 고친다. 이 과정을 오갈 수 있을 때 대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이 늘어난다.
다음 질문은 여전히 “더 알려 줘”여도 좋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까지의 설명에서 아직 확인하지 않은 건 뭐야?”라고 물어보자. 이야기가 한층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어쩌면 거기일지 모른다.
참고 자료 (4건)
- Suddendorf & Corballis(1997), Mental Time Travel and the Evolution of the Human Mind
- NIMH, Seasonal Affective Disorder
- Ries 외(2017), Serotonin modulates a depression-like state in Drosophila responsive to lithium treatment
- Dantzer 외(2008), From inflammation to sickness and depression: when the immune system subjugates the br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