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마마쓰의 스즈키 역사관에는 실물 크기의 자동차 모형이 있다. 진짜 차처럼 생겼지만 운전해서 나갈 수는 없다. 공업용 클레이로 형태를 만든 디자인 모형이기 때문이다.[1]
컴퓨터로 차를 360도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왜 굳이 점토를 깎을까? 답은 간단하다. 화면에서 멋있는 차와 눈앞에 서 있을 때 멋있는 차는 다를 수 있어서다.
종이에선 멋졌는데, 옆에서 보니 영 아닌 경우
스즈키가 공개한 디자인 과정은 상품 방향을 정한 뒤 스케치를 그리는 단계부터 시작한다. 손그림은 물론 Photoshop과 3D 도구도 쓴다.[5][8] 지붕을 조금 낮추거나 옆선을 바꿔 보기에 그림만큼 빠른 도구도 없다.
문제는 그림이 늘 잘 나오는 각도를 골라 보여 준다는 것. 화면에서 근사했던 휠 주변의 곡선이 옆이나 뒤에서 보면 어색할 수도 있다. 그래서 스즈키의 조형 모델러는 선택한 디자인을 3분의 1 크기 클레이 모형 여러 개로 만든다고 설명한다.[10]
사진 한 장만 보고 산 물건이 실제로는 생각과 달랐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자동차라면 교환도 쉽지 않으니 더 꼼꼼해야 한다.
그런데 왜 실물 크기로 또 만드나
안이 좁아 보이지는 않는지, 창문의 높이가 어색하지 않은지, 빛을 받은 차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진짜 크기에서 더 분명해진다. 그래서 후보를 좁힌 뒤 1대 1 크기 모델을 만든다.[10] 단순히 전시용으로 커다란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클레이는 조금 더 붙이고, 깎고,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설계 회의에서 “이 선을 조금만 더 부드럽게”라고 말로 싸우는 대신 직접 보여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가 미술실인지 자동차 회사인지 잠깐 헷갈리는 건 보너스다.
그럼 점토 모형을 그대로 찍어 내나?
아니다. 스즈키의 설명에는 클레이 작업뿐 아니라 CAD로 정확한 형상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도 나온다.[10][11]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부품이 들어갈 공간, 제작 가능성, 생산 비용을 따져야 한다. 모델러와 설계자가 실제로 만들 수 있는 차를 향해 계속 수정한다.
따라서 “연필에서 점토로, 점토에서 곧장 공장으로”가 아니다. 스케치로 생각을 꺼내고, 작은 입체로 점검하고, 실물 크기로 확인한 뒤, 정확한 설계로 다듬는 것에 가깝다. 모든 제조사가 똑같은 순서를 따른다는 뜻은 아니다.
최신 소프트웨어가 등장해도 점토가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뒤처져서가 아니다. 화면에 대고 “현실에서도 정말 멋있어?”라고 묻는 역할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