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밤낮으로 일을 맡기면 드디어 할 일이 없어질 줄 알았다. 실제로 첫 작업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다른 버전도 만들어 볼까?”, “디자인도 바꾸자”, “홍보도 해볼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끝도 없이 나온다.
완성품은 늘었다. 할 일 목록도 같이 늘었다. 일을 줄이려고 고용한 도구가 다음 일을 발견하는 데까지 도움을 준 셈이다.
속도가 빨라지면 포기했던 일도 다시 보인다
하나 만드는 데 며칠씩 걸릴 때는 꼭 필요한 것만 만든다. 몇 시간 만에 가능해지면 여러 버전을 시험해 보고 싶어진다. 비교를 끝내면 개선할 부분이 보이고, 개선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기능이 떠오른다.
산 하나를 넘었더니 정상이 아니라 새로운 등산로 안내판이 나온 기분이다. “다음 코스도 도전하시겠습니까?”
한 작업에 드는 시간은 줄었지만, 해볼 만한 작업의 수는 계속 늘 수 있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퇴근 시간이 저절로 앞당겨지는 건 아니다.
일을 시키는 입장에서 깨닫는 것
개인 프로젝트를 AI와 함께 굴려 보면 관리자 입장도 조금 이해된다.
“좋아, 끝났네. 그럼 다음은 이것. 잠깐, 저것도 가능하겠는데?”
시키는 사람의 아이디어에는 종료 버튼이 없다. AI를 오래 돌리는 것은 흥미로운 실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속도를 사람에게 그대로 요구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직원에게는 잠도 필요하고, 일 밖의 삶도 있다.
상상 속 대화 하나.
사장: “이제 열 배 빨라졌어요!”
직원: “그럼 열 배 일찍 퇴근하나요?”
사장: “아뇨, 열 배 더 일할 수 있죠!”
직원: “저희가 빨라진 이유가 그거였나요?”
재미로 하는 일과 월급 받는 일은 다르다
자기 취미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밤새 시험할 수도 있다. 재미도 결과도 본인이 선택해서 얻는다.
반면 직장에서는 정해진 성과를 낸 뒤 계속 일을 추가한다고 임금이나 자율성이 같은 비율로 늘지는 않는다. 회사의 성장을 위한 시도는 의미가 있어도, 직원의 시간을 무한대로 빌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25년에 발표된 고객 상담 업무 연구에서는 한 기업의 AI 지원 도입 후 시간당 해결 건수가 평균 15% 늘었다. 업무 처리량이 늘었다는 결과이지, 모든 사람이 그만큼 일찍 퇴근한다는 결과는 아니다.
끝나는 기준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오늘 어디까지 하면 충분한가? 새 일을 넣는 대신 어떤 일을 뺄 것인가? 절약한 시간을 누가 누릴 것인가?
이 질문이 빠지면 효율화의 보상은 다음 업무로 자동 지급된다.
AI: “다음 업무는요?”
기획자: “아직 엄청 많아.”
직원: “저는 퇴근해도 될까요?”
더 빠른 도구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쯤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