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글을 읽다가 구석에 낯선 버튼이 보인다. ‘이상 현상 모드 적용’.
누르자 화면이 잠깐 깨진다. 이어서 안내문이 뜬다. “게시된 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수정이 발견됐습니다. 여덟 번 연속 정확하게 판정해 주세요. 교정 업무에 대한 보수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잠깐만. 독자로 들어왔는데 왜 출근 처리가 된 거지?
이건 글 사이트 자체를 호러 코미디 게임으로 바꾸는 구상이다. 아직 출시된 기능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게임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기획이다. 반복되는 공간에서 이상을 구별하는 8번 출구(The Exit 8)에서 착안했지만 무대는 지하도가 아니라 늘 보던 웹페이지다.
같은 글을 여덟 번 판별해야 나갈 수 있다
먼저 정상인 글을 보여 준다. 제목, 사진, 목차, 본문, 관련 글까지 기억해야 한다. 다음 화면에는 바로 그 글이 다시 나온다.
어딘가 달라졌을 수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상 있음’ 또는 ‘이상 없음’을 누른다. 맞히면 1단계씩 올라가고, 여덟 번 연속 정답이면 탈출이다. 한 번이라도 틀리면 0단계로 돌아간다.
특히 무서운 건 정말 아무 변화도 없는 회차다. 앞에서 괴물을 봤으니 다음 화면도 의심스럽다. 쉼표 하나까지 범인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심해서 ‘이상 있음’을 누르면 바로 실패.
소재도 실제 글이다. 인터넷 밈의 기원, 이상한 뉴스, 별난 음식 이야기가 섞인다. 원래부터 황당한 내용이라 더 헷갈린다.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졌다”는 문장이 고장 난 것인지, 원래 글 제목인지부터 따져야 한다.
목차, 광고, 여백까지 적이 된다
목차의 세 번째 항목만 “뒤를 돌아보세요”로 바뀐다. 경로 표시에는 “홈 > 글 > 돌아갈 수 없음”이 적힌다. 예상 읽기 시간은 “4분”에서 “남은 시간 4분”으로 변한다.
광고의 ‘닫기’ 버튼은 ‘독자 닫기’가 된다. 광고를 닫으러 왔다가 광고한테 닫히는 인생.
진짜 소름 끼치는 장치는 조용하다. 글의 두 단 사이 하얀 틈에서 누군가 얼굴을 반만 내민다. 아래로 내리면 사라지고, 다시 위로 올리면 더 가까워져 있다. 여행 사진 속 멀리 있던 낯선 사람이 확대하자 화면을 가득 채운다.
본문의 “이 밈이 퍼진 이유”도 어느 순간 “당신이 아직 집에 못 가는 이유”가 된다. 댓글에는 “전임자입니다. 저는 7단계까지 갔어요”라고 달린다.
한참 무섭게 한 뒤에는 아주 멀쩡한 글을 보여 준다. 괴물이 쉬는 시간에도 독자의 의심은 혼자 야근한다.
0~2단계는 오타, 3~5단계는 침입, 6~7단계는 실종 사건
0~2단계에서는 사이트가 친절하다. “임시 검수에 협조해 주세요.” 작은 오탈자와 사진 위치의 변화 정도만 나온다.
3~5단계로 가면 여백에서 얼굴이 나타나고, 문단이 멋대로 바뀌고, 스크롤을 되돌렸을 때 페이지가 붉게 변한다. “편집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라는 알림도 뜬다.
6~7단계에서는 이전 검수자가 남긴 글을 발견한다. “여덟 번만 하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 옆에는 새 담당자로 등록된 플레이어의 가상 이름이 보인다. 실제 개인정보를 가져올 필요 없이 게임 안에서 만든 이름이면 충분하다.
마지막 문제도 규칙대로 판정할 수 있어야 한다. 7단계까지 왔다고 무조건 괴물을 띄우면 긴장은 사라진다. 정상 페이지도 끝까지 정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여덟 번째 성공. 출구가 아니라 인사팀이었다
드디어 성공. 하얀 화면에 메시지가 뜬다.
“교정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부의 빈자리가 채워졌습니다.”
“귀하를 신규 편집자로 등록했습니다. 퇴사는 접수하지 않습니다.”
난 글 읽으러 왔다고. 근로계약서가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퇴사 신청’을 누르면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문구는 오타로 수정했습니다”라고 돌아온다. 교정 권한이 노동법보다 위에 있는 모양이다.
물론 실제 게임에는 언제든 정상 사이트로 돌아가는 버튼이 있어야 한다. 갇히는 건 이야기 속 주인공뿐이다. 탈출 후 관련 글 목록에 잠깐 “전임자의 인수인계 문서”가 보이면 여운까지 완벽하다.
글이 계속 늘어나는 사이트라서 가능한 농담
일반적인 틀린 그림 찾기는 무대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글 사이트에는 이미 여행기, 요리 이야기, 밈 설명 같은 무대가 쌓여 있다. 새 글이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이상 현상용 배경도 생긴다.
게임을 마친 뒤에는 원본 글을 멀쩡한 모습으로 읽게 할 수도 있다. 글을 읽다가 게임에 들어가고, 게임을 하다 원래 글이 궁금해지는 순환이다. 구현한다면 원문은 그대로 보존하고 선택한 게임 화면에서만 변경을 보여 주는 방식이 좋다. 심한 번쩍임이나 갑작스러운 큰 소리 대신 작은 위화감을 쓰고, 나가는 버튼도 계속 남겨 둔다.
결국 이 설정의 진짜 괴물은 사진 속 그림자가 아니다.
글 공장은 원고를 너무 빠르게 쏟아냈다. 검수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글들이 독자를 납치해 무료 교정 담당자로 쓰기 시작했다.
유령의 정체가 밝혀졌다.
인력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