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에서는 친절했다. 펜, 수첩, 간식, 가격, 세금, 합계까지 줄줄이 찍혔다. 그런데 ‘회사에 낼 영수증’을 따로 받으니 종이에 남은 말은 이것뿐이다.
“물품대 10,000엔.”
종이는 더 점잖아졌는데, 기억력은 갑자기 나빠졌다.
회사는 무엇을 확인하려는 걸까
돈을 냈다는 사실과 회사 비용으로 처리할 만한 지출인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품목별 영수증은 업무용 물건과 개인 물건을 구분할 단서를 준다. 합계만 적힌 종이로는 그 작업이 어렵다.
직인이 찍힌 종이가 무조건 더 좋은 증거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남겨 둔 정보다.
굳이 새 영수증을 받는 이유도 있다
회사명을 수취인으로 써야 하거나, 구매 목록을 불필요하게 공개하고 싶지 않거나, 사내 규정이 특정 서식을 요구할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지출 확인 사이에는 실제로 긴장이 있다.
일본에서는 일정한 소매업 등이 발급한 서류가 요건을 충족하면 구매자 이름 없이도 세법상 ‘적격 간이 청구서’가 될 수 있다. 자세한 요건은 일본 국세청 안내를 참고하면 된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세금계산서와 증빙 규칙이 다르므로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럼 돈세탁에 악용되는 건가?
항목이 사라지면 개인 구매를 회사 비용에 끼워 넣거나 한 번 결제한 비용을 중복 청구하는 일을 발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돈세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돈세탁은 범죄 수익의 출처나 실제 소유자를 숨기는 행위다. 일본 경찰청 설명에서도 핵심은 범죄 수익의 은폐다. 회사의 부당한 경비 청구와는 구분해야 한다.
가장 멀쩡한 해결책
품목이 보이는 원본을 남기고, 필요한 이름이나 사용 목적을 덧붙이자. 별도 증빙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그 요건도 지키고, 같은 결제를 두 번 청구하지 않게 대조하면 된다.
물건을 전부 기억하는 종이를 버리고, ‘아무튼 물건’만 기억하는 종이를 보물처럼 모신다.
서류철만 살찌고 증거는 다이어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