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 가족은 떠오른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다음 장면이 시작되기도 전에 말을 건다. 조금 전까지 떠들다가 이번에는 감동해서 운다. 반대쪽에서는 아이가 큰소리를 낸다.
주인공은 앞에 있는데 소리의 주인공은 양옆에 있다. 제발 지금만은 말 걸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대답하지 않아도 신경은 쓰인다
거의 대답하지 않고 앞을 봤다. 다툼도 없었고 식도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말이 걸려 올 때마다 답할지 말지 고민했다. 답하면 나까지 식 중에 떠드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다. 주변에 들리고 싶지 않은 대화도 있었다.
말을 흘려듣고 다시 신랑신부를 본다. 그걸 계속 반복했다. 그냥 소음도 힘든데 이 소음에는 답장 버튼까지 붙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 듣고 있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한 좌석에 실황, 음악, 예고편, 눈물까지
멜로디가 떠오르면 노래한다. 다음 장면이 보이면 먼저 말한다. 감상이 생기면 바로 이야기한다. 감동하면 운다.
실황 중계, 배경음악, 예고편, 리액션 영상이 한 좌석에 다 들어 있었다.
아이의 큰소리도 신경 쓰였다. 다만 아이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기대하는 것과 어른이 지금 흥얼거리거나 대화하는 건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른 쪽에는 “그걸 꼭 지금 해야 하나?”가 더해진다.
식이 좋았으니까 제대로 보고 싶었다
결혼식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와서 다행이었고 감동도 했다. 음식, 분위기, 신랑신부와 가족의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서약의 키스는 신랑이 신부의 볼에 했다. 관객 취향으로는 입맞춤이 더 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앞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운 코 훌쩍이는 소리나 휴지 소리까지 거슬리기 시작했다. 친척들이 식 도중 차비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지금 그 얘기?” 싶었다.
차비를 정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식 전후에 이야기할 수도 있지 않은가.
감동해도 좋고 울어도 좋다. 다만 대화는 나중에 해 줬으면 한다.
결혼식을 보러 왔지, 옆자리 해설이 붙은 감독판을 보러 온 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