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으로 일하라”면서 초안을 보여 주면 혼난다. 이 찜찜함을 배움으로 바꾸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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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는 “일찍 상의하세요”,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작성 중인 기획안을 보여 줬더니 “좀 더 정리해서 가져오세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완성해서 제출하면 이번에는 “왜 미리 상의하지 않았나요?”라고 한다. 설명을 위해 만든 사례지만, 대체 어느 단계에서 보여 줘야 하는지 갑자기 알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드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일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의 의도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서 쓸모 있는 것을 얻으려면, 겪은 일을 하나의 질문으로 바꾸고 그 질문에 담긴 자신의 짐작이 틀릴 가능성도 열어 둬야 한다.

1. 먼저, 일어난 일과 거기서 읽어 낸 의미를 나눈다

앞선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일찍 상의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점, 작성 중인 기획안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점, 제출 기준이 공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상사는 자율적으로 일하는 걸 싫어한다”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해석이다.

생각을 이어 가려면 해석이 필요하다. 그래도 검토할 시간이 없었거나, 사전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했거나, 상대가 생각하는 “초안”의 완성도가 달랐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불쾌했다는 감정을 지울 필요는 없다. 감정과 원인에 대한 추정을 한 문장에 몰아넣지 않으면 된다.

메모를 두 항목으로 나누면 다루기 쉽다. “관찰: 목적과 예산을 비워 둔 기획안을 보여 줬더니 다시 제출하라는 말을 들었다.” “가설: 상의하기 전에 필요한 항목이 공유되지 않았을 수 있다.” 이렇게 쓰면 나중에 조건을 확인하고 해석을 고칠 수 있다.

2. 설명의 타당성과 설명한 사람의 행동을 따로 확인한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설명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설명을 한 사람의 대응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두 생각이 함께 있어도 괜찮다. 내용의 타당성, 실제 말과 행동,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미친 영향을 나눠 보면, 그 사람을 전반적으로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만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한 번의 대화만으로 “말과 행동이 늘 다르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다음 기회에 제출 조건을 물으면 설명이 일관되게 정리되는가. 조건이 같은데도 기준이 바뀌는가. 질문했을 때 구체적인 답이 돌아오는가. 모순을 발견한 뒤 필요한 것은 판결보다 추가 관찰이다.

이 시선은 자신에게도 돌릴 수 있다. “편하게 물어보세요”라고 해 놓고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숨을 쉬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알아차린 일을 계기로 평소 자신의 답변 하나를 바꿀 수 있었다면, 그 깨달음은 이미 다음 행동으로 이어진 셈이다.

3. 돌아본 뒤에는 작게 시도할 일을 정한다

콜브의 경험학습 관점에서는 경험, 성찰, 개념화, 시도가 서로 연결된다.[1] 이 글에서 소개하는 메모 절차는 그 관점을 업무 상황에 적용해 본 제안이다. 적어 보기만 한다고 학습 효과나 직장 환경의 개선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초안을 보여 줬다가 제동이 걸렸다”는 경험에서 “필요한 자료를 갖춰 상의하면 일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목적, 선택지, 아직 정하지 못한 점을 한 장에 정리하고 “지금은 방향성만 확인하고 싶은 단계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무엇을 봐 달라는 것인지 분명해지면 반응을 비교하기도 쉬워진다.

결과도 남긴다. 상의가 진전됐다면 준비 부족이나 기대의 차이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기준을 확인해도 매번 바뀐다면 다른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도해 본 덕분에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다. 그 수정까지 경험에서 얻을 수 있다면 메모는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된다.

4. 작성 방식을 고칠 것인가, 제출 규칙을 다시 볼 것인가

같은 수정 요청이 반복된다면 절차와 전제를 나눠 생각해 볼 만하다. 기존 목표나 규칙 안에서 방식을 고치는 것이 단일고리 학습이고, 목표나 판단 규칙 자체도 다시 묻는 것이 이중고리 학습이라는 구분이다.[2]

기획안의 요점을 맨 앞에 쓰기, 첨부 자료를 줄이기, 상의할 시간을 조정하기. 이런 것은 절차의 개선이다. 반면 “완성본 평가와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한자리에서 다루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건 아닐까”, “어디까지 담당자가 직접 결정해도 되는지 먼저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일의 전제가 검토 대상이 된다.

전제까지 의심하는 쪽이 언제나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첨부를 빠뜨렸다면 첨부하면 되고, 긴급 대응 중에는 조직의 목적부터 다시 논의할 여유가 없다. 절차를 조정해도 같은 어려움이 남을 때 질문의 범위를 넓힌다. 큰 개념으로 설명하는 능력과 적절한 규모의 개선을 고르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5. “메타인지가 부족해서”라는 말로 설명을 끝내지 않는다

자신의 이해와 판단을 점검하는 일은 이 과정의 중심에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만으로 메타인지 능력이 높은지 낮은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저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단정하면 우리 자신의 가설을 점검할 여지도 좁아진다.

일본 경제산업성(METI)의 “사회인 기초력”은 세 가지 능력과 열두 가지 능력 요소로 구성된 일본의 직업 역량 체계다. “인생 100년 시대의 사회인 기초력” 자료에는 자기 인식과 성찰도 명시돼 있다.[3] “메타인지”라는 독립된 요소명이 없다고 해서 성찰을 다루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실무에서는 “메타인지를 높이자”보다 구체적인 질문이 쓰기 쉽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나”, “그 전제를 상대에게도 전달했나”, “다른 설명을 배제할 수 있는 정보가 있나.” 상대를 평가하기 전에 자신의 메모에 이 세 가지를 더해 보자.

6. 질문을 만드는 힘과 개선을 실행할 조건을 구분한다

“부하 직원이 일찍 상의하지 않는다”를 문제로 삼으면 상의 횟수를 늘리는 대책이 나오기 쉽다. “어느 단계에서 상의해도 되는지 공유되지 않았다”고 보면 상의를 받을 조건이나 확인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방안이 나온다.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필요한 일도 달라진다. 다만 어느 쪽이 맞는지는 현장의 정보로 확인해야 한다.

또한 좋은 질문을 세웠다고 해서 혼자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부담이 늘어나는가, 시험해 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가. 설명과 조율, 권한과 협력이 필요하다. 제안 하나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오로지 환경 탓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에드먼드슨의 1999년 연구는 한 제조 기업의 51개 팀에서 심리적 안전감과 학습 행동의 관련성을 보여 줬다.[4] 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관찰 연구이므로, 신뢰를 높이면 반드시 성과가 좋아진다는 인과관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상의하기 편한지뿐 아니라 시간과 지원 체계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여기서 심리적 안전감은 질문하거나 우려를 표현하는 등 대인관계상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팀의 인식과 관련된다.[4] 모든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품질 기준을 낮춘다는 뜻은 아니다. 초안을 내놓을 수 있으면서도 그 초안을 엄격하게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7. 다음에 쓸 수 있는 것은 긴 논고보다 한 장의 기록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기록을 남긴다. 특정 연구에서 효과가 검증된 양식이 아니라, 관찰과 해석을 섞지 않기 위한 정리 방식의 제안이다.

  • 일어난 일: 방향성을 상의하려고 초안을 냈지만 완성본으로 평가받았다
  • 어려웠던 점: 크게 수정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었던 쟁점을 논의하지 못했다
  • 가설: 상의와 승인의 차이에 대한 공통 이해가 없다
  • 다른 설명: 목적이나 제약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상대가 판단할 수 없었다
  • 다음 확인: 제출 전에 “이번에는 방향성과 완성도 중 어느 쪽을 봐 주실 건가요?”라고 묻는다
  • 결과와 수정: 돌아온 답과 다음번에 바꿀 점을 짧게 쓴다

이렇게 하면 다른 직장이나 다른 담당자에게도 응용하기 쉽다. “그 사람은 까다롭다”는 기록보다 “첫 검토 때 목적부터 맞춘다”는 판단 기준은 다음 상황에서도 적용하기 더 쉽다.

기록하는 양에도 한계를 둬도 된다. 새로운 정보도 다음 행동도 더 나오지 않는다면 그날의 정리는 끝낸다. 모든 경험을 글로 쓸 필요는 없고, 지치는 일을 겪은 뒤 그저 쉬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해도 괜찮다.

8. 경험을 배움으로 바꾸는 것과 참고 남아 있는 것은 별개다

질문이나 제안을 할 때 반복해서 모욕을 당하거나 상의한 일로 불이익을 받는 등 위험이 느껴지는 상황이라면 계속 더 시험해 볼 필요는 없다. 믿을 만한 상담 창구를 찾거나 담당 업무와 관여 방식을 바꾸는 것을 검토하는 등 자신을 지킬 선택지를 마련해 두자.

기록을 남긴다면 업무상 필요한 범위에 한정하고 회사의 정보 관리 규정을 따른다. 고객 정보나 내부 자료를 개인 기기로 반출하거나 그대로 공개 글에 활용하지 않는다. 공개할 사례는 이름만 지워도 당사자를 알아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특정 시기, 직책, 고유한 표현을 빼고, 설명을 위해 만든 사례와 실제 기록을 구분한다.

찜찜한 경험에서 얻고 싶은 것은 자신이 옳았다는 증거만이 아니다. “다음에는 제출 전에 목적부터 맞추자”, “이런 조건에서는 다른 곳에 상의하자”처럼 작게 활용할 수 있는 선택지다. 다음 날 내려야 할 판단 하나가 조금 쉬워지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경험은 충분히 도움이 된다.

참고 자료 (4건)

[1] Experience Based Learning Systems. “8 Things to Know About the Experiential Learning Cycle.” 콜브의 경험학습 순환 모형에 대한 설명. https://learningfromexperience.com/themes/experiential-learning-theory-videos/

[2] Argyris, C. (1976). “Single-Loop and Double-Loop Models in Research on Decision Making.”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1(3), 363–375. https://doi.org/10.2307/2391848

[3] 일본 경제산업성. “인생 100년 시대의 사회인 기초력.” https://www.meti.go.jp/policy/economy/jinzai/Ecforthe100-yearlife.pdf

[4] Edmondson, A. (1999). “Psychological Safety and Learning Behavior in Work Teams.”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44(2), 350–383. https://dash.harvard.edu/entities/publication/13a7b031-0fdd-45ec-a7e0-2b80e2bc67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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