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가 승진하거나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조급해진다. 그렇다고 그 경쟁을 끝없이 이어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제 인생은 승부가 끝난 경기처럼, 남은 시간이나 채우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 때 필요한 것은 목표를 하나 더 세우기보다, 무엇에 지쳤고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나눠 보는 일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회사의 평가나 하나의 관계에 생활과 자신의 가치를 전부 맡기지 않는 방법을 살펴본다. 쉴 시간을 확보하고, 이미 있는 버팀목을 확인하고, 여력이 있다면 작은 선택지 하나를 남겨 둔다. 이직과 부업, 투자를 한꺼번에 시작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물여덟은 인생의 마감일이 아니다. 이 글은 20대 후반에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데서 출발한다. 다른 나이에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래의 근황이 전부 내 숙제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한 친구, 직책을 맡은 입사 동기, 이직한 지인, 작품을 공개한 누군가. 서로 다른 사람들의 근황을 한 장에 겹치면, “나 말고는 다 잘하고 있다”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모범생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성장해라”, “시장에서 네 가치를 높여라”, “쉬는 날도 알차게 보내라”가 더해진다. 일도 생활도 언제까지나 제출하지 못한 과제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과제를 정말 모두 맡고 싶은 걸까. 결혼하고 싶은 걸까, 뒤처진 기분이 싫은 걸까. 일을 바꾸고 싶은 걸까, 지금 받는 평가에서 벗어나고 싶은 걸까. 둘 다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행동이 같지는 않다.
발달심리학자 Arnett는 성인으로 이행하는 시기를 일과 관계, 가치관을 탐색하는 시기로 논의했다. 2000년 논문은 특히 18~25세에 초점을 맞추고, 그런 탐색을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조건도 중요하게 다룬다. “스물여덟이면 누구나 위기를 겪는다”거나 “이 나이까지 답을 내야 한다”는 연구가 아니다.
이 관점은 방황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끝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의 모습이 꼭 한 번에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볼 실마리가 된다.
“남은 경기만 치르면 되지”라는 말의 위안과, 따로 봐야 할 것
쉬는 날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보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하루를 마친다. 그렇게 보내고도 만족스러운 날을 실패로 셀 필요는 없다. 즐거움을 반드시 수익이나 성장으로 바꿔야 한다는 규칙도 없다.
“이제 남은 경기만 치르면 되지”라는 말에는 남의 채점에서 잠시 벗어나는 홀가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늘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다.
다만 “오늘은 쉬고 싶다”와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같은 말에 담겨 있어도 조금 다르다. 전자라면 쉬는 것 자체가 지금의 선택이다. 후자라면 의욕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시간과 돈, 몸 상태, 의지할 사람 등 무엇이 선택을 좁히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잠들기 어려운 상태 등이 이어져 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의료기관 등에 상담하는 것도 중요하다. “쉬면 반드시 돌아온다”고 단정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기서 제안하려는 것은 인생을 대역전시키는 일이 아니다. 우선 오늘의 나에게 숙제를 너무 많이 더 주지 말자는 것이다.
회사에서 보낸 하루로 나 전체의 성적을 매기지 않는다
급여, 낮 동안의 인간관계, 성취감, 앞으로의 전망. 일은 여러 역할을 한꺼번에 맡고 있다. 그래서 직장에서 싫은 일이 생기면 생활 전체가 어둡게 보일 때도 있다.
회사의 평가가 신경 쓰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수입과 앞으로의 일하는 방식에 관계된 만큼 “신경 쓰지 마”라는 말만으로 넘길 수는 없다. 그래도 어떤 상사의 평가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같은 것으로 놓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업무에서 지적을 받았다”를 “나는 아무것도 못한다”로 넓히기 전에, 지적받은 작업과 고칠 수 있는 부분을 작게 나눠 본다. 평가 기준이나 담당 범위가 모호하다면 그것부터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일에만 나를 채점할 권한을 주는 것은 다르다. 회사에서 얻은 경험도, 직장 밖에서 즐기는 일도, 누군가와 나눈 별것 아닌 대화도 내 생활의 일부로 남는다.
“회사라는 하나의 게임에 전부 올인하지 않는다.” 조금 과장된 비유지만, 이 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리감은 이것이다. 일을 책임 있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삶의 ‘분산’은 할 일을 일곱 가지로 늘리자는 뜻이 아니다
이 생각을 금융의 언어로 표현하면 위험 분산이나 포트폴리오에 가깝다. 다만 인생은 금융상품이 아니고, 인간관계를 자산처럼 갈아 끼우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기서 피하고 싶은 것은 한 곳이 흔들릴 때 휴식도, 상담할 곳도, 즐거움도 함께 사라지는 상태다. 수입원을 늘리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 생활을 지탱하는 것: 현재 급여, 공적 지원 제도, 사용할 수 있는 저축 등. 이용 조건과 실제로 쓸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한다.
- 환경을 다시 선택할 준비: 경력에 관한 메모, 일하면서 익힌 기술, 일하는 방식에 관한 정보 등. 당장 이직하기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 나의 즐거움과 성취감: 게임, 요리, 창작, 배움 등.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것이어도 괜찮다.
- 사람과의 연결: 가벼운 대화, 업무 상담, 취미를 함께하는 시간 등. 사람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 쉴 수 있는 시간과 장소: 수면, 산책, 목욕,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등. 자신에게 맞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모두 새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회사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먼저 이미 있는 것을 세어 본다. 귀갓길에 마음이 편해지는 장소, 가끔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게임도 매출이 나지 않는다고 가치가 0인 것은 아니다.
버팀목을 늘리면 반드시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일정을 너무 빽빽하게 채우면 지치고, 본업과 부업이 같은 업계라면 같은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수보다 각자의 부담과 역할을 보고, 내가 쓸 수 있는 여지가 남는지 살피는 일이다.
돈에 관한 선택지는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도 있다
회사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싶다는 이야기에서 곧바로 “투자로 돈을 불리자”로 넘어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투자 수익은 보장되지 않고, 돈이 필요한 시점에 자산 가격이 내려가 있을 수도 있다. 금융에서의 분산 역시 손실을 없애 주는 장치는 아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매달 필요한 돈, 납부 기한, 가까운 시일 안에 쓸 돈이다. 그런 다음 쓰지 않는 계약이나 조정할 수 있을 만한 지출이 있는지 확인한다. 주거, 출퇴근, 치료, 가족의 생활에 필요한 비용까지 자유를 위해 일괄적으로 줄일 필요는 없다.
저축이나 수입에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회사 밖에도 다른 길을 만들자”라고만 말하는 것은 무리다. 가계를 정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확인하고, 적절한 상담 창구와 연결되는 것이 먼저일 때도 있다.
투자를 검토한다면 생활과 가까운 시일의 지출에 필요한 자금과 분리하고, 목적, 기간,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의 범위, 비용과 세제를 확인한다. 여기서는 개별 상품이나 자산 배분을 추천하지 않는다. 투자하지 않는 선택도 포함해 자신의 상황에 맞춰 판단하자는 이야기다.
“자산이 늘어난 날만 내 인생도 흑자”가 된다면, 나를 채점하는 대상을 회사에서 시장으로 바꿨을 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을 조금씩 되찾는다
Ryan과 Deci의 자기결정성이론은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심리적 욕구를 논의한다. 쉽게 말하면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것, 해낼 수 있다는 감각,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자율성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납득하며 선택할 수 있다. 이 이론을 근거로 투자나 부업, 이직을 하면 기운을 되찾는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다.
일상에 적용해 본다면 질문을 다음처럼 작게 나눌 수 있다.
-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오늘 자유 시간은 공부가 아니라 휴식에 쓴다”여도 좋다.
- 해냈다는 감각을 알 수 있는 단위로 나눌 수 있는가. “이직에 성공한다”보다 “지금까지 맡았던 일을 세 가지 적는다”처럼 말이다.
- 혼자 떠안지 않을 수 있는가. 상담할 상대에게 이야기를 들어 줬으면 하는지,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한지 전해 본다.
일에서 재량이 없고, 판단 기준은 바뀌며, 책임만 늘어나는 경우에는 개인의 기분 전환만으로 부족할 때도 있다. 담당 범위를 확인하거나 조직 안에서 상담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일을 정리하고 판단과 책임의 경계를 확인하는 방법도 참고할 수 있다.
작품도 인간관계도 새로운 성적표로 만들지 않는다
글이나 앱, 학습 메모처럼 직접 만든 것이 남아 있으면 기쁠 때가 있다. 회사의 평가와 별개로 “이건 내가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되기도 한다.
다만 누구나 자신의 작업을 공개하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자격증을 따거나 쉬는 날 부업을 하는 것도 의무가 아니다. 취미에 매출 목표를 붙이는 순간 쉴 곳이 두 번째 직장이 되기도 한다.
업무 경험을 작품이나 경력 자료로 정리할 때에는 회사 기밀, 고객 정보,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가져오지 말고, 권리 관계와 사내 규정을 확인하자. “내가 담당했다”와 “자유롭게 공개해도 된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사람과의 연결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모든 역할을 맡지 않도록 궁리할 수는 있지만, 소중한 사람을 “의존 대상이니 줄여야 한다”는 식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 관계를 늘리기 어려운 시기도 있다.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보지 말고, 상대의 여력과 내가 혼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까지 함께 생각하고 싶다.
이번 주에는 한 가지에 거는 판돈만 낮춰 본다
삶을 다시 설계한다고 하면 대공사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쳐 있을 때 일곱 가지 개선 계획을 세우면, 그 계획이 여덟 번째 부담이 된다.
우선 지금 가장 무거운 것 하나를 적는다. “회사 평가가 쉬는 날에도 신경 쓰인다”, “주변과 비교하며 조급해진다”, “돈 문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처럼 지금 겪는 어려움이면 된다.
다음으로 오늘 내려놓아도 문제가 없는 압박과 대응이 필요한 현실을 나눈다. SNS를 보는 시간을 줄이는 일과 납부 기한을 확인하는 일은 따로 다룰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력에 맞는 행동 하나를 고른다. 경력을 한 항목만 적는다. 쓰지 않는 계약 하나를 확인한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연락한다. 아니면 오늘은 일정을 더하지 않고 쉰다. 했는지 못 했는지를 새로운 자기 채점의 재료로 삼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만의 흑자 게임”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은 매일 성장하며 계속 이기는 일이 아니다. 필요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조금 쉴 수 있었다, 무리한 약속 하나를 줄였다, 다음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조금 보였다. 그런 변화를 남의 화려한 근황 때문에 없던 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스물여덟이든 다른 나이든, 지금 인생 전체의 결과를 매길 필요는 없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답을 서두르기 전에, 무엇을 지키고 무엇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지 다시 선택해 본다. 인생을 이미 승부가 끝난 경기라고 부르고 싶은 날에도, 그 여지를 찾아봐도 좋다.
Jeffrey Jensen Arnett, “Emerging Adulthood,” Noba. 성인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특징과 문화적 배경을 설명한다. 해설
Jeffrey Jensen Arnett (2000), “Emerging adulthood: A theory of development from the late teens through the twenties.” 18~25세를 중심으로 한 이론과 적용 조건. 원논문 초록
Richard M. Ryan & Edward L. Deci (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을 논의한다. 원논문 PDF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Investor.gov, “Diversify Your Investments.” 분산해도 시장 하락 때의 손실을 막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설명한다. 공식 자료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Investor.gov, “Asset Allocation and Diversification.” 투자 기간과 위험 감내 수준에 따른 판단을 설명한다. 공식 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