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진행 상황 관리표를 만들죠.” 다음 주가 되면 색상 구분에 입력 규칙까지 잘 갖춘 엑셀 파일이 완성된다. 그런데 답장은 여전히 오지 않는다. 담당자에게는 독촉하는 일에 더해 ‘독촉한 날짜를 입력하는 일’까지 생겼다.
관리표가 도움이 됐는지 확인하려면 완성된 표보다 그 뒤의 업무를 봐야 한다. 다음에 누가 움직여야 하는지 분명해졌는가.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아졌는가. 그리고 표를 갱신하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부담이 줄었는가.
업무 개선을 맡은 사람과 관리표만 늘어나는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해, 표를 만들기 전과 사용하는 동안, 그리고 그 역할을 마칠 때 확인할 점을 정리했다.
우선 한 건만 골라 어디서 멈췄는지 따라가 보기
예를 들어 거래처에서 사양에 대한 답변이 오지 않아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건이 있다고 하자. “연락이 늦다”는 설명만으로는 다음 조치를 고르기 어렵다. 요청을 보낸 시점부터 일이 멈춘 지점까지, 한 건만 따라가 보자.
- 요청이 상대방에게 전달됐는가.
- 상대방이 답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모두 있었는가.
- 누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는가.
- 다음에 연락할 사람과 시점은 정해져 있었는가.
누가 담당자인지 아무도 몰라 두 사람이 같은 상대에게 독촉하고 있었다면, 목록 형태의 관리표가 도움이 된다. 담당자, 답변을 기다리는 내용, 다음 조치를 공유하면 중복과 누락을 줄일 수 있다.
반면 거래처가 기다리던 것은 우리 회사의 사양 확정이었다고 해 보자. 결정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은 채 담당자가 매일 아침 ‘답변 대기 중’이라고 입력한들, 셀에서 결정권자가 자라나지는 않는다.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누가 언제 사양을 결정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누구와 상의할지다.
한 건의 경과만 보고 모든 건의 원인을 단정하지 말고, 비슷하게 지연되는 일도 같은 지점에서 막히는지 살펴보자. 관리표는 그 확인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열을 늘리기 전에 “이 정보로 무엇을 결정하나요?”
유용해 보이는 항목은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 진행률, 담당자 의견, 지연 사유, 대응 현황, 확인자란. 항목을 하나 더할 때마다 입력하는 사람의 일도 늘어난다.
각 열을 보며 “누가 이걸 보고 무엇을 바꾸는가”라고 물어보자.
예를 들어 ‘다음 연락일’은 담당자가 그날 연락하기 위해 쓰는 정보다. ‘기한 초과’는 책임자가 우선순위를 조정하기 위해 쓴다. 그런 결정은 이뤄지지 않고 매주 빨간 셀만 바라본다면, 색을 입히기 전에 어떻게 운영할지부터 정해야 한다.
처음에는 업무 건, 담당자, 막힌 이유, 다음 조치, 확인일처럼 실제로 쓰는 항목으로 표를 시작할 수 있다. 다만 필요한 항목은 업무마다 다르다. 품질 확인이나 감사를 위해 남겨야 하는 기록도 있으므로, 용도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삭제하지 말고 어떤 부서에서 필요로 하는지, 보관 규정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이미 다른 시스템에 있는 정보를 옮겨 적게 한다면, 누구의 어떤 확인 작업이 쉬워지는지도 분명히 하고 싶다. 가상의 예지만, 관리하는 사람의 시간을 하루 5분 줄이려고 열 사람이 매일 5분씩 옮겨 적고 있다면 부담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뿐일 수 있다.
‘완성’이 아니라 사용 후의 변화를 비교하기
도입하기 전에 무엇을 개선하려는 표인지 한 문장으로 정하자. “답변 대기 건의 담당자를 찾는 일과 중복 독촉을 줄인다” 정도면 된다.
그다음에는 가령 2주 동안만 시험해 보며 아래 항목의 변화를 살핀다. 2주는 시험 기간의 한 예이므로, 실제 업무 건이 처리되는 기간에 맞춰 조정한다.
- 담당자를 찾거나 진행 상황을 묻는 데 걸린 시간
- 같은 건에 대해 중복해서 보낸 확인 요청이나 독촉
- 기한이 지나도 다음 조치가 정해지지 않은 건
- 표를 입력하고 수정하고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
가상의 예로, 도입 전에는 팀 전체가 상황을 확인하는 데만 주당 2시간을 썼고, 도입 후에는 상황 확인에 1시간, 표 갱신에 1시간 30분을 썼다고 하자. 이 두 작업의 시간을 합하면 도입 전보다 30분 늘어난다. 다만 이전에는 놓쳤던 중요한 건을 챙길 수 있게 됐다면, 그 가치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시간만으로 품질이나 사고 예방 효과까지 판단할 수는 없다.
정확하게 시간을 재기 어렵다면 같은 종류의 업무에서 확인 횟수를 세거나, 담당자가 어려움을 겪은 상황을 짧게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업무 건수나 난이도가 다른 주를 그대로 비교하지 말고, 아직 알 수 없는 점도 적어 두자. 표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개선됐다는 증거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회의와 1:1 면담도 ‘그다음’으로 이어지게 하기
표만으로 풀리지 않는 막힘도 있다. 여러 부서에 걸친 결정에는 회의가 필요할 수 있고, 본인이 꺼내기 어려운 고민은 1:1 면담에서야 드러날 수도 있다.
그곳에서 얻은 정보를 다음 행동으로 연결하자. 회의라면 결정한 내용, 실행할 사람, 확인할 날짜를 함께 정한다. “승인이 늦다”는 문제가 드러났다면 승인자가 없을 때 누구와 상의할지 정한다. 1:1 면담에서 업무량이 한쪽에 치우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당사자와 상의해 담당 업무나 기한을 조정하고 나중에 부담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한다.
1:1 면담의 가치를 매번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같은 어려움을 반복해서 듣는데도 바꿀 권한이 있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면, 면담 횟수를 늘리기 전에 문제를 전달하고 대응하는 경로를 돌아봐야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당사자의 의사와 필요한 공유 범위를 확인하고, 진행 상황 관리표에 그대로 옮겨 적지 않는다.
도움이 된 관리표도 축소할 날을 정하기
표가 필요했던 이유는 사라졌는데 갱신 요청만 남는 경우가 있다. 담당자와 연락 경로가 정해지고 정보도 자동으로 들어오게 됐지만, 예전의 수작업 입력과 정기 회의는 계속된다.
시험 운영을 시작할 때 재검토할 날도 정해 두면 “만든 사람에게 미안해서 남겨 둔다”는 상황을 피하기 쉽다. 필요한 기록은 보존하면서, 매일 하던 입력을 주 1회로 줄이거나, 일반적인 건은 자동으로 정보를 가져오고 예외만 확인하거나, 회의에서 모든 건을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일을 그만두는 등 규모를 줄일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직장에서 제안할 때는 “이 표는 쓸모없어요”보다 “이 열은 어떤 결정에 쓰고 있나요?”, “2주 동안 시험해 보고 확인 시간과 갱신 시간을 함께 비교해 볼까요?”, “상황이 안정되면 어떤 입력을 줄일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쉽다.
엑셀 관리표를 만들고 일이 줄었는가. 답은 파일의 완성도보다 사용한 뒤 일어난 변화에 있다. 확인을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 멈춰 있던 결정이 진행된다. 필요한 기록은 남기면서 불필요하게 옮겨 적는 일을 그만둘 수 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 다음에는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됐는가?”까지 확인하고 싶다. 색이 예쁜 관리표보다, 필요할 때만 열어도 되는 관리표가 훨씬 더 일을 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